맹자는 崇(숭) 땅에서 처음 제나라 왕을 만나보고는 물러나와 그때 이미 제나라를 떠날 뜻이 있었다. 맹자는 제나라의 객경으로 있으면서 처음 뜻을 바꾸지 않기 위해서 녹봉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제나라가 인접 국가와 싸워 군대가 출동하기까지 했으므로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겠다고 청할 겨를이 없었다. 그 후 맹자는 제나라를 완전히 떠나면서 休 땅에 이르러 제자 公孫丑(공손추)에게 이 사실을 밝혔다.
有師命에 대해서는 제나라가 인접 국가와 싸우는 전쟁이 일어나 군대의 출동명령이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인접 국가와의 전쟁에 대해서는 제나라가 연나라와 전쟁한 일을 가리킨다고 보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단정하기 어렵다. 不可以請은 떠나겠다고 청할 틈이 없었다는 뜻이다. 久於齊는 제나라에 오래 머물렀던 일을 말한다.
‘공손추·하’의 마지막 장인 이 제14장은 제나라 宣王(선왕) 때의 일인지 (민,혼)王(민왕) 때의 일인지 분명하지 않다. 제선왕 때의 일이라고 한다면 맹자가 제선왕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실과 모순된다. 제민왕 때의 일이라고 한다면 맹자가 과연 제민왕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벼슬 살았던가 의문이 생긴다. 따라서 이 제14장의 사실관계는 명확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장은 의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송의 孔文仲(공문중)은 ‘벼슬 살면 녹봉을 받는 것’은 禮이고 ‘맹자가 제나라의 녹봉을 받지 않은 것’은 義라고 하고, 義가 禮보다 중하다고 했다. 공문중의 논평에 따르면 맹자가 다른 나라의 객경으로 있을 때 녹봉을 받는 것이 예에 맞는 일이었지만, 올바른 정치를 시행하지 않았던 제나라의 녹봉을 받지 않고 언제든 떠나려고 한 것이 의에 맞는 일이었다고 하겠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려고 했던 것은 제나라에서 도가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나라인 조국을 함부로 떠날 수 없는 처지라면 어디까지나 조국에 도가 실행되도록 힘쓰는 것이 의에 합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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