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오대산 월정사 가을 숲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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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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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그레 수줍음, 하얀 입김 뿜어 가렸네

오매! 오대산 잔등에 불이 붙었네! 14일 구름바다 사이로 붉게 물든 오대산 첩첩 단풍. 크고 작은 산들이 비로봉 아래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넙죽 엎드려 있다. 구름바다 저 너머엔 아직 푸른 옷을 입은 산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웅성거린다. 산첩첩 구름첩첩 단풍첩첩 바람첩첩. 푸른 산, 푸른 하늘, 흰 구름, 붉은 단풍. 가을 오대산은 다섯장의 붉은 연꽃으로 둘러싸인 부처님 나라이다. 겨울에 흰눈이 내리면 백련꽃이 벙긋 입을 벌린다. 평창 오대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오매! 오대산 잔등에 불이 붙었네! 14일 구름바다 사이로 붉게 물든 오대산 첩첩 단풍. 크고 작은 산들이 비로봉 아래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넙죽 엎드려 있다. 구름바다 저 너머엔 아직 푸른 옷을 입은 산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웅성거린다. 산첩첩 구름첩첩 단풍첩첩 바람첩첩. 푸른 산, 푸른 하늘, 흰 구름, 붉은 단풍. 가을 오대산은 다섯장의 붉은 연꽃으로 둘러싸인 부처님 나라이다. 겨울에 흰눈이 내리면 백련꽃이 벙긋 입을 벌린다. 평창 오대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천년의 승지라 보배로운 이곳
한 가닥 오솔길 그윽이 뚫렸어라
사는 스님은 세월을 가벼이 여기나
지나는 손은 머무는 시간 아까워라
나는 새는 영험한 탑을 피해가고
신령한 용은 옛 못에 잠겨 있도다
오대산이 멀지 않음을 알겠노니
훗날 다시 와서 노닐 수 있으리

조선 선비 이행(李荇·1478∼1534)의 ‘월정사’에서
겨울 준비에 바쁜 다람쥐.
겨울 준비에 바쁜 다람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에 불이 붙었다. 단풍잎들이 노릇노릇 알맞게 익었다. 이번 주말쯤(22일)이면 만산이 활활 불타오를 것이다. 바늘잎 사이에서 나부끼는 발그레한 나뭇잎들. 껑충 큰 전나무 틈새로 키 작은 활엽수들이 까르르 웃는다. 앙증맞다. 괴불나무 빨간 구슬열매. 파르르 떨고 있는 선홍빛 화살나무 잎사귀들. 달걀처럼 갸름한 불그죽죽 복자기 나뭇잎. 바스락! 바스락! 발에 밟히는 마른 황갈색 낙엽들. 울긋불긋한 잎들이 언뜻언뜻 어른거린다. 몽환적이다. 아침이슬에 젖은 단풍잎은 봄꽃보다 더 말갛다. 눈이 젖는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산문(山門)이다.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1km 남짓한 거리.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우렁우렁하다. 머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나이 100년 안팎의 장년 나무들이다. 중생은 이곳에서 속세의 때를 벗고 부처님 땅에 들어간다. ‘바람 샤워’로 욕망과 집착의 비린내를 씻는다.

쭉쭉 빵빵 전나무 숲서 ‘바람 샤워’


전나무는 쭉쭉 빵빵 늘씬하다. 아름드리 몸통에 군살이 하나도 없다. 흑갈색 용비늘 살갗이 탄탄하다. 전나무 가지는 그늘로 뻗는다. 햇살은 ‘참빗 바늘잎’ 틈새로 비껴든다.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햇볕이 바늘잎을 통해 걸러진다. 햇살이 국숫발처럼 가지런해진다. 따뜻하고 아늑하다.

전나무 숲길에는 죽은 전나무 고목 등걸이 누워 있다. 2006년 10월 23일 밤 홀연히 쓰러졌다. 600세 최고령 전나무 어른이 눈을 감았다. 밑동은 가운데가 텅 비어 나무통이 되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함지박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얼굴들이 천진난만하다. 어른도 아이가 된다. 동강난 나무 윗부분은 허허롭게 바닥에 누워 있다. 다람쥐와 산짐승들이 그 통속을 들락거린다.

전나무 숲길은 적막하다. 바람이 가끔 “쏴아∼” 하고 숲을 흔든다. 전나무 피톤치드 냄새가 향긋하다. 피톤치드는 향기로운 식물성 살균 물질이다. 사람 몸에 이로운 녹색 음이온이다. 온종일 그 향을 맡으며 숲 속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에 상큼한 바람. 사람들은 느릿느릿 걷는다. 뒷짐 진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어슬렁거린다. 달팽이처럼 오간다. 딸내미 손잡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해찰한다. 가다 말다 한자리에서 맴돈다.

‘다시 어깨 힘 빼고 스적스적 들어선 산책로/…헛된 욕심들 하나씩 내려놓고/나는 욕심들 하나씩 내려놓고/나는 하나도 급할 일 없는 나그네/찬 이슬 내리기 전까지 천천히 걷고 또 걸을 것이다.’

-고인숙의 ‘오대산국립공원에서’ 부분

전나무 숲길은 나무늘보처럼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어깨 힘을 빼고 무심하게 걸어야 좋다. 숨을 깊이 들이쉴 때 한 걸음, 천천히 내쉴 때 한 걸음. 숨을 들이마시면서 발을 뒤꿈치부터 천천히 들어올려 앞쪽으로 옮기고, 숨을 내쉬면서 발을 역시 뒤꿈치부터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다. 가슴이 뻐근하면서 시원하다. 뻥 뚫린다.

콧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린다고 누가 뭐랄 사람 없다. 구두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허위허위 걸어보라. 하이힐과 스타킹을 벗어 봉지에 넣어 들고, 설렁설렁 걸어보라.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바닥을 흙에 내디뎌 보라. 땅기운이 정수리까지 뻗친다. 생명의 기운이 용솟음친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너그러워진다.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하늘을 받치고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왼쪽)과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오대산 옛길의 섶다리 부근.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하늘을 받치고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왼쪽)과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오대산 옛길의 섶다리 부근.

곱게 익은 단풍숲길 만행(卍行)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 부도 밭을 지나 오대산 옛길로 이어진다. 옛길은 계곡을 따라 상원사까지 올라간다. 20리(8km) 남짓한 거리. 노닥거리며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곱게 익은 단풍 숲길. 화전민들이 밭일 하러 오갔던 오솔길이다. 한용운 시인이 ‘단풍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고 노래하던 그런 분위기의 길이다.

단풍은 이미 오대산 꼭대기에서 산 아래로 하루 50m씩 내려오고 있다. 하루 25km씩 남쪽으로 스며들고 있다. 머지않아 치악산을 거쳐 월악산 속리산 지리산으로 번질 것이다. 요즘 오대산은 발톱에 봉숭아물이 점점 짙게 드는 상태.

옛길은 오대천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가르마처럼 나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자동차 길이 있지만, 이 좋은 길을 놔두고 굳이 차 타고 갈 필요가 있을까. 자동차는 상원사에서 돌아올 때 타면 충분하다. 오대천 물은 정갈하다. 푸른 하늘이 덩그마니 내려와 앉았다.

오대산 옛길은 월정사 반야교를 건너 회사거리에서 시작된다. 회사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 목재회사가 있었던 곳. 한때 화전민 360여 가구가 살던 너와집 동네였다. 오대천은 아래로 흐르고, 사람들은 그 반대로 오대천을 거슬러 오른다. 물은 숲 향기를 퍼 나르고, 사람들은 그 냄새에 취해 숲 품속을 파고든다.

단풍 숲길 만행(卍行).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소낙비’가 쏟아진다. 황갈색 참나무 잎은 빙그르 춤을 추며 내려앉는다. 침엽수 바늘잎은 화살처럼 비껴 꽂힌다. 다람쥐가 멀뚱멀뚱 입을 주억거린다. 바닥은 낙엽으로 푹신하다. 푸른 조릿대와 붉은 낙엽더미가 한데 버무려져 넉장거리로 누워 있다. 돌돌돌 돌을 감고 흐르는 물소리, 웅얼웅얼 끝없이 중얼거리는 바람소리, 삐삐! 종종! 유목민 노래 같은 새소리가 어우러진다. 계곡물 웅덩이엔 나뭇잎 배들이 빙빙 떠돈다.

나무들이 계곡 벼랑길을 비스듬히 막은 채 누워 있다. 나무 터널이다.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그 나무 아래를 지난다. 거제수나무 하얀 껍질이 부얼부얼하다. 옛 사람들은 그 껍질을 벗겨 편지지로 썼다. 나무껍질 가을편지다. 섶다리 위에 사람들이 오간다. 섶은 솔가지나 작은 나뭇가지를 말한다.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과 상판을 엮고, 그 위에 섶과 흙을 덮은 게 섶다리다. 한여름 큰물 나면 한순간에 휩쓸려 가는 어설픈 임시 다리다.



비로봉에 서면 산 첩첩 구름 첩첩

오대산은 다섯 봉우리가 만드는 거대한 연꽃 봉오리다. 그 한가운데 꽃심이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풍수지형’이다. 부처님 사리는 바로 용의 정골 부분에 묻혀 있다.

가을 오대산은 단풍으로 물들어 붉은 연꽃이 핀다. 겨울에 흰눈이 내리면 백련 꽃이 벙긋 입을 벌린다. 오대산은 몸집이 두툼한 육산이다. 풍만한 연꽃이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 중에서 으뜸은 비로봉(1563m)이다. 비로봉에 올라야 비로소 오대산 연꽃나라가 발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5장의 붉은 연꽃잎 한가운데 노란 꽃술(적멸보궁)이 함초롬히 고개를 들고 있다.

비로봉은 상원사에서 3km 거리. 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이면 너끈하다. 적멸보궁이 딱 중간 지점이다. 가파르지 않다. 비로봉 꼭대기에 서면 산들이 아득히 겹쳐 있다. 아슴아슴하다. 구름은 산허리를 감싸며 꿈틀댄다. 산 첩첩, 구름 첩첩, 안개 첩첩, 바람 첩첩….

‘계곡 길을 따라 굽이굽이/산 위에 올라와 보니//운무(雲霧)는 산자락을/고즈넉이 휘어감아/여인의 허리를 포근히/안아 들은 듯 하고//안개비는 촉촉이/내 가슴을 적시어 오는데’

-박상현 시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거쳐 북대상두암으로 가는 길은 능선길이다. 천년 주목나무, 하얀 자작나무가 반겨준다. 죽어 천년을 살고 있는 주목 고목도 미라처럼 서 있다. 군데군데 서어나무가 참나무들 틈새에서 낯가림을 한다. 능선은 산 어깨를 밟고 가는 길이다. 사방에 눈길을 줘도 걸림이 없다. 발바닥이 간지럽다. 발밑에서 구름이 인다. 오대산이 토해내는 하얀 입김이다.

mars@donga.com  
▼다섯 장의 붉은 꽃잎 두른 오대산 연꽃나라▼


오대산 연꽃나라는 5장의 붉은 꽃잎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로봉(1563m)-동대산(1434m)-두로봉(1422m)-상왕봉(1491m)-호령봉(1561m)이 바로 그렇다. 꽃심 적멸보궁(1150m)은 중대(1050m)에서 비로봉을 향해 20분쯤 올라가다 보면 나온다. 부처님 사리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선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 태백 정암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한국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오대산 동서남북 산허리와 그 한가운데에는 보살들이 살고 있는 다섯 ‘대(臺)’가 있다. ‘대(臺)’는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나 같다. 동대 관음암에는 일만 관세음보살, 서대 염불암에는 일만의 대세지보살, 남대 지장암에는 일만의 지장보살, 북대 상두암에는 미륵불이 머무른다. 중대 사자암은 일만의 문수보살이 있는 곳이며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한마디로 오대산은 부처님이 꽃술 부분(적멸보궁)에서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 있고 이를 중심으로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에 살고 있는 보살들이 부처님을 우러러보며 설법을 듣는 형상이다.

월정사는 연꽃나라(적멸보궁)로 들어가는 산문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그 밑을 받치는 푸른 연잎이다. 월정사(해발 700m)는 동대산 발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자장 율사(590∼658)가 움막을 짓고 살았던 곳이다. 자장은 중국 당나라 오대산(3058m·산시 성) 자락에서 공부하고 고국에 돌아와 이곳에 또 다른 오대산 연꽃나라를 세웠다.

오대산은 소박하다. 후덕하다. 산봉우리 32개, 계곡 31개, 폭포 12개를 거느린 맏며느리 같은 산이다. 김시습(1435∼1493)은 “풀과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서 속된 자들이 감히 오지 않아 으뜸”이라고 했다. 조선 숙종 때 선비 김창흡(1653∼1722)도 “기(器)가 중후하여 마치 유덕한 군자와 같다. 가볍거나 뾰족한 태도가 조금도 없다. 암자가 수풀 깊숙한 곳에 있어 곳곳마다 참선 들기에 안성맞춤이다”라고 했다.

■ Travel Info

교통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부 요금소에서 빠져 월정사로 가면 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면 동서울 터미널(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진부행 버스를 탄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진부에선 월정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먹을거리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황태해장국이 대부분이다. 식당마다 맛과 가격이 비슷한다. ▽경남식당(033-332-6587) 보배식당(033-332-6656) 민속식당(033-333-4497) 산수명산(033-333-3103) 오대산비로봉식당(033-332-6597) 오대산통일식당(033-333-8855) 유정식당(033-332-6818) 동대산식당(033-332-6910) 만우농박(033-332-6818) 산들산채식당(033-333-7198) 오대산가마솥식당(033-333-5355) 오대산산채일번가(033-333-4604) 우리식당(033-334-6655·토종닭 송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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