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 글씨에 깃든 신라의 혼과 정신 이젠 깨워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8일 03시 00분


‘탄생 1300년 헌정전’ 마련한 박대성 화백
“추사도 서울∼영주 오가며 김생 글씨 익혀”

신라 땅 경주에 살면서 김생의 서예 미학에 매료돼 그를 위해 헌정 전시를 마련한 박대성 화백. 배경은 전시작품인 ‘진경희이(眞境希夷)-목탁과 다보탑 석가탑’. 경주=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신라 땅 경주에 살면서 김생의 서예 미학에 매료돼 그를 위해 헌정 전시를 마련한 박대성 화백. 배경은 전시작품인 ‘진경희이(眞境希夷)-목탁과 다보탑 석가탑’. 경주=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용필(用筆)이 신과 같다.’ ‘그 형세가 험하고 마디가 짧다.’ ‘기위(奇偉·뛰어나게 훌륭함)하고 법이 있다.’

신라 명필 김생(金生·711∼790 이후). 예서 행서 초서에 능하여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고 중국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탄생 13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경북 경주의 한국화가 박대성 화백(66)이 붓을 들었다. 김생과 정신적 예술적인 대화를 나누며 그 결과를 작품으로 표현해 그를 위한 헌정전을 마련한 것이다. 경주엑스포타워 17층에서 10월 10일까지 열리는 ‘김생과 박대성 1300년 만의 대화, 도를 듣다(聞道)’.

박 화백이 서울을 떠나 경주에 터를 잡은 것은 1999년. 독학으로 그림만 그리면서 신라의 정신과 마음을 필묵으로 재해석해왔다. 원래 경북 청도 출생이니 이제 신라인이 다 됐다. 13일 경주에서 그를 만났다.

“동양 학예의 맨 앞에는 글씨가 있습니다. 김생의 글씨는 신라의 정신이고 한국미의 원형이지요. 그런데 부끄럽게도 우리는 김생을 잊었습니다. 10여년 전 경주에 내려와 신라의 잠을 깨우고 싶었다면 그 후 10년은 김생을 만나 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그 김생을 불러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씨와 함께했던 한 인간의 지고한 삶, 글씨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을 말하고 싶습니다.”

박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11점의 서화 대작을 선보인다. ‘장엄불국(莊嚴佛國)-순교 이차돈’ ‘원융무애(圓融無碍)-금강역사’ ‘진경희이(眞境希夷)-목탁과 다보탑 석가탑’, ‘현월(玄月)-분황사 달밤’ ‘청동불두’ 등. 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이번 작품들도 힘이 넘치고 파격적이다.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석비 탑본도 함께 전시한다.

김생의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명(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銘)’ 탁본. 서예박물관 제공
김생의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명(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銘)’ 탁본. 서예박물관 제공
박 화백은 김생의 서예와 목탁, 다보탑 석가탑, 금강역사, 미륵보살 등의 신라 유물과 연결했다. 그것을 통해 김생이 추구했던 신라 화엄불국의 미학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서울 예술의전당의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지금 신라의 정신으로 김생을 기릴 후학으로는 박 화백이 제격”이라고 했다.

박 화백에게 김생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팔십 평생 벼슬하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붓을 잡고 글씨 하나로 일관한 것입니다. 그 인생이 녹아들었기에 그의 글씨는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왕희지를 능가했지요.”

박 화백은 추사 김정희와의 비교를 통해 김생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다.

“저도 추사를 태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생 앞에서 여지없이 깨져 버렸죠. 추사는 서울과 영주를 오가며 김생의 글씨를 익혔습니다. 김생이 추사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지요.”

전시가 열리는 엑스포타워는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을 투각으로 표현한 80여 m 높이의 건물. 그 도도한 높이에서 경주땅을 내려다보며 김생과 신라문화의 깊이에 빠져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다만 전시장이 좁고 어수선해 아쉽다. 경주시가 지금이라도 전시장을 모두 터서 박 화백의 작품만으로 공간을 꾸미길 기대한다. 12월 14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는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선 ‘김생과 한국 서예’ 기획전이 열린다. 054-748-3011

경주=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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