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대 데뷔 25주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씨

  • 동아일보

“혼자가 아닌 팬들과 걸어 더 큰 기쁨”

크레디아 제공
크레디아 제공
이탈리아 로마의 집에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씨(49·사진)에게 전화를 건 것은 현지 시간 오전 9시였다. 시간을 앞당기고 싶었지만 조 씨의 공연기획사는 “9시 이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조 씨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체코, 스위스 등을 돌며 51일 동안 투어하고 돌아와 푹 쉬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 있을 때는 굉장히 늦게 일어나고 아무것도 안 해요. 뭐든지 슬로 모션으로 천천히요. 음식 만들거나 청소하는 것, 정원 가꾸는 것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중요해서 아껴가며 음미하죠.” 공연 때문에 한 해 300여 일 동안 외지 생활을 하는 그에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 달콤하단다.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한 조 씨는 올해 세계무대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1983년 3월 28일 오전 3시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 로마 공항에 내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작은 동양인 소녀는 정상에 오른 뒤 명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25주년이 됐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걸어왔던 길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죠. 가장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30년 가까이 세계적 소프라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얼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운을 뗀 그는 “세 가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첫째, 저는 노래하려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니 음악을 통해 미션을 하고 있는 거죠. 둘째는 일에 대한 욕심과 궁금증, 호기심이 굉장히 많고, 마지막으로는 책임감이 강해서 개인적으로 힘들어도 미리 한 약속(공연 스케줄)은 꼭 지킨다는 거죠.”

그는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가족의 경조사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아직 미혼이기도 하다. 결혼 계획은 없을까. “굉장히 슬프죠. 바쁘니까 롱타임 릴레이션십(오랜 기간 교제)이 안돼요. 이제 남자에 대해서는 ‘하산’해야죠. 요즘 남자를 보면 다 읽은 책 같아요. 다시 읽어 보면 재미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지만 다 읽고 나서는 뻔한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거죠…. 글쎄 완전히 저를 흔들 만한 책을 쥐게 되면 모를까. 호호.”

조 씨는 5월 6, 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계무대 25년 기념 공연을 연다. ‘고(古) 음악’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 함께 비발디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헨델 오페라 ‘알치나’ 중 ‘내게 돌아와 주오’ 등 바로크 시대 곡들을 그 시대 모습에 가깝게 재현한다.

“무대에서 바로크 곡을 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그동안 색깔이 강한 열정적 무대만 선보였는데, 이번엔 한층 정제된 발성과 표현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죠.” 그는 옛날 식 악기를 쓰고 음높이도 현대식 연주보다 반음 이상 낮춰 연주하는 ‘아카데미…’의 반주에 맞춰 색다른 무대를 선보인다. 6월로 예정된 일본 투어도 동일본 대지진과 무관하게 일정대로 진행한다. “제 라이프(life)는 도전”이라는 말답게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5만∼25만 원. 1577-5266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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