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AI는 식량 대량생산 시스템의 산물”

  • 동아일보

◇식량의 종말
폴 로버츠 지음·김선영 옮김 524쪽·2만5000원·민음사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현대의 식품시스템
은 오히려 미래의 식량을 위협하고 있다.
브라질의 대형 농장에서 기계를 이용해 콩
을 수확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현대의 식품시스템 은 오히려 미래의 식량을 위협하고 있다. 브라질의 대형 농장에서 기계를 이용해 콩 을 수확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수많은 소와 돼지, 오리가 도살돼 땅에 묻혔다. 축산농가의 시름도 깊어만 가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천재(天災)일까, 이 같은 재앙을 부르는 데 인간의 손길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2004년 2월 15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한 수의사는 지역 양계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이 업자의 닭을 치료해주었는데 이제 한 시간마다 네 마리씩 닭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병원성이었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빠르게 고병원성균으로 바뀐 것이다. 다른 양계농가로 전파된 것은 물론, 순식간에 사람과 동물 간 공통 감염형태로 발전해 15명 이상의 감염자가 나왔다.

저자는 대장균이나 바이러스 등 미생물을 가리켜 “산업적 식품 생산 시스템에 이만한 적수도 없어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대량생산과 가공식품 위주인 현대 식품산업에서 균과 바이러스의 위협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는 뜻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자원과 환경 문제를 주로 다뤄온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의 식품 시스템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하며 이 시스템 때문에 미래의 식량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진단한다.

대장균은 먼지와 섞이면 못 가는 곳이 없다. 소가 길가에 뒹굴거나, 차가 비포장도로를 지나며 먼지가 일면 길가의 논밭으로 대장균이 섞인 먼지가 고스란히 앉는다. 대량생산되는 채소의 경우 대형 풀 절단기를 사용하는데 이 절단면은 대장균이 들러붙어 번식하기에 좋은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대량생산이기 때문에 세척과정도 간략해진다. 식품생산이 산업화되고 대형화될수록 효율은 오르지만 그만큼 깨끗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먹는 건 어려워지는 셈이다.

저자는 다른 산업과 달리 식품산업에는 관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농업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가격이 폭락해도 생산을 줄이기 어렵다. 땅을 사는 것 자체에 너무 큰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계속 농사를 지어서 무엇이든 생산해내야 하는 것이다.


거대 식품기업 및 대형 마트와 같은 거대 소매업자들은 농산물이 더 저렴해지도록 부추긴다. 식품기업은 폭락한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매업자들은 상시적으로 가격할인정책을 펼치며 부담을 고스란히 생산자에게로 떠넘긴다. 결국 농업은 더 대형화되고 화학비료나 항생제, 유전자변형식품과 같은 기술을 동원하게 된다. 이처럼 비대해진 채 타성적으로 굴러가는 현대의 식품 시스템은 앞선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질병 전파에 취약하다. 새로운 상황에 맞춰 시스템을 개선하기도 어려워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식품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경제 발전과 함께 이들의 식생활은 점점 육류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식품을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같이 농업이 취약한 지역은 점점 더 세계식량경제에서 소외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식품산업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현장 취재를 통해 인류가 ‘식량의 종말’의 위기에 처해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먹을거리 지역 공동체를 구성해 지역 식품을 활용하고 육류 소비를 줄여 이를 어류 소비로 대체하며, 소비자 스스로가 식품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등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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