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먼동아 와인 칼럼 이길상의 섹시한 와인이 좋다! 13] 몬테스 라벨에 천사가 그려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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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4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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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암 투병을 격려한 두 남자의 끈끈한 우정 이야기

▲ 몬테스 퍼플 엔젤.
▲ 몬테스 퍼플 엔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 중 하나로 칠레 와인 ‘몬테스’(Montes)가 있다. 2000년 수입 판매된 이 와인은 2009년 누적판매량이 300만병을 넘었고, 올 연말 아니면 내년 상반기에는 400만병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몬테스 와인의 라벨을 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천사’다. 와인 라벨에 천사가 들어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아우렐리오 몬테스와 함께 몬테스의 공동 설립자인 더글라스 머레이와 연관이 있다.

더글라스 머레이는 어렸을 때부터 갖은 사고와 질병을 겪으며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심지어 피부암도 극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항상 자신과 함께 한다는 굳은 믿음이 생겼고, 플라스틱으로 된 가벼운 천사 상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천사 상을 선물하기를 즐겼다. 수호천사가 그들의 삶에도 함께 하기를 바랐기 때문. 몬테스 라벨에 천사를 넣은 것도 이런 믿음에서 비롯됐다. 그의 사무실과 집은 항상 천사 상으로 넘쳐났고, 그의 얼굴은 이 때문인지 항상 온화한 미소로 빛났다.

▲ 몬테스의 공동 설립자 더글라스 머레이. 생전의 그는 수호천사를 믿었다.
▲ 몬테스의 공동 설립자 더글라스 머레이. 생전의 그는 수호천사를 믿었다.

그런 그가 지난 6월30일(현지시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신에 퍼진 식도암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몬테스 와인의 공동 설립자인 더글라스 머레이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담담하게 보도됐다. 그런데 사실 그의 죽음 뒤에는 두 남자의 눈시울을 적시는 끈끈한 우정 이야기가 있다.

현 PDP 와인 김영근 부회장과 더글라스 머레이,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스스로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김영근 부회장은 사회생활을 통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유독 더글라스 머레이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만났지만 진정한 친구로서 관계를 만들었다.

인연은 김영근 부회장이 1997년 나라식품 대표로 더글라스 머레이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더글라스 머레이는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해 10여 곳의 칠레 와이너리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고,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시음회에서 몬테스 와인의 맛에 반한 김 부회장은 거래를 희망했고, 결국 몬테스 와인의 공식 수입원이 됐다.

▲ 더글라스 머레이(왼쪽에서 세 번째)와 진한 우정을 나눈 김영근(맨 오른쪽) PDP와인 부회장. 맨 왼쪽은 현 나라식품 윤영규 사장.
▲ 더글라스 머레이(왼쪽에서 세 번째)와 진한 우정을 나눈 김영근(맨 오른쪽) PDP와인 부회장. 맨 왼쪽은 현 나라식품 윤영규 사장.

이후 두 사람은 몬테스 와인을 한국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조 추첨 행사 만찬에 사용되고, 2004년 한국과 칠레의 FTA가 체결되고 칠레 와인이 주목받으면서 몬테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와인이 됐다.

▲ 몬테스 와인 라벨에서는 천사를 볼 수 있다.
▲ 몬테스 와인 라벨에서는 천사를 볼 수 있다.
나이가 7살 차이나고, 국적도 달랐지만 두 사람의 인간적인 신뢰가 1등 와인 몬테스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를 믿고, 의지한데는 또 하나의 공통 분모가 있다. 바로 암 투병이다.

먼저 더글라스 머레이가 김 부회장을 도왔다. 한 차례 위암으로 고비를 넘긴 김 부회장은 2003년 위암이 재발해 정상적인 회사 근무를 하지 못하고 치료에 전념했다. 이 때 더글라스 머레이는 수시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김 부회장을 만나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격려했다. 더글라스 머레이는 젊었을 때 피부암으로 고생했지만 결국 이겨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김 부회장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김 부회장이 암을 이겨내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자 가장 기뻐한 것도 더글라스 머레이다. 그는 2008년 5월 칠레로 김 부회장을 초청해 온 마음을 다해 환대했고, 기뻐했다. 매 식사마다 최고의 식당을 찾아 대접했고, 1997년 처음 관계를 맺었을 때 얘기를 다시 떠올리며 인연에 감사했다.

그런데 1년 후, 이번에는 더글라스 머레이에게 암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건강 검진을 받은 더글라스 머레이는 식도암이 온 몸으로 전이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의사에게 전해 들었다.

그는 김 부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식도암으로 진단 받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 도움을 청했다. 암을 두 번이나 이겨낸 김 부회장에게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김 부회장은 “무엇보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과 용기가 중요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천사의 보호하심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간구하라”고 조언하며 반드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불어 넣었다. 자신이 암으로 고통 받을 때 힘을 준 그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힘을 실어 줄 차례였다.

▲ 지난해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우리나라를 찾은 더글라스 머레이.
▲ 지난해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우리나라를 찾은 더글라스 머레이.
김 부회장의 기도 덕일까, 아니면 더글라스 머레이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수호천사의 보호 때문일까. 더글라스 머레이는 12시간에 걸친 수술과 이후 6차례의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마치고 기운을 회복해 2009년 10월 다시 한국을 찾았다.

김 부회장이 직접 인천국제공항에서 맞은 더글라스 머레이의 모습은 많이 야위었고, 지팡이에 의존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살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모습에, 그 고마움에 김 부회장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더글라스 머레이 또한 자신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났다는 감격에 벅찬 마음을 억누를 길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15일 후 2차 수술을 다시 받아야 한다며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김 부회장은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2차 수술을 앞두고 그 먼 거리의 출장을 감행한 그의 용기와 헌신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일 그 같은 경우라면 출장은 고사하고 두려움과 염려로 아무 일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을까.”

대규모의 환영 행사가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더글라스 머레이를 환대했다. 다시금 건강을 회복해 예전처럼 웃음을 찾기는 바라는 김 부회장과 나라식품 임직원들은 곁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줬다. 힘든 암 치료의 과정 속에 있는 더글라스 머레이였지만 이 날만은 밝게 웃을 수 있었다.

▲ 더글라스 머레이를 위한 성대한 환영 행사.
▲ 더글라스 머레이를 위한 성대한 환영 행사.

하지만 칠레로 돌아간 후 더글라스 머레이는 수술을 받았지만 점차 병세가 악화돼 업무를 접고 집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 됐다. 이 와중에서도 그는 김 부회장에게 틈틈이 자신의 근황을 알렸고, 지난 6월14일 2010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그리스를 2-0으로 물리치자 축하한다는 메일까지 보냈다.

김 부회장 또한 칠레가 온두라스를 물리치자 승리를 축하하는 메일을 보냈고, 또 한국이 아르헨티나와 경기할 때 응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게 김 부회장과 더글라스 머레이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가 됐다.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를 물리치는 기적도, 더글라스가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더글라스 머레이의 쾌유를 기원하는 나라식품 임직원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 계단 중간 김영근 부회장과 나란히 선 더글라스 머레이의 생전 웃음이 빛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더글라스 머레이의 쾌유를 기원하는 나라식품 임직원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 계단 중간 김영근 부회장과 나란히 선 더글라스 머레이의 생전 웃음이 빛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나라에서 몬테스의 신화를 일군 더글라스 머레이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두 남자의 이야기는 몬테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언제나 영원할 것이다.
글&사진·이길상 와인전문기자(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정회원 juna109@naver.com)
사진제공·나라식품

‘섹시한 와인이 좋다’를 연재하는 이길상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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