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해리포터’ 마법 승강장 속으로 빨려들듯

동아일보 입력 2010-09-10 03:00수정 2010-09-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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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왼쪽부터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 배경이 된 왕립 오페라하우스의 실내, 영화 ‘판타스틱4’에서 외계인에게 파괴되는 수난을 겪는 런던아이에서 바라본 런던 풍경, TV 드라마 시리즈 ‘튜더스’의 주인공 헨리 8세가 실제로 기거했던 햄프턴 궁전.

노팅힐게이트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런던 중심부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면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한다. ‘왕의 십자가’란 뜻이니 우리말로는 ‘왕십리(王十里)’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에든버러, 케임브리지 등 런던 북쪽으로 떠나는 열차들의 출발지인 이곳은 서울역 만큼이나 들고나는 인파로 번잡한 역이다.

방금 도착한 열차가 토해내는 인파를 뚫고 8번 플랫폼을 따라 걷다 보면 왼쪽에 ‘플랫폼 9와 3/4’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벽을 발견하게 된다. 이 표지판 밑에는 벽 속에 절반 넘게 파묻힌 채로 고정돼 있는 대형마트에서나 볼 법한 카트 손잡이가 솟아나와 있다. 전세계적으로 마니아를 거느린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인공 해리와 친구들이 호그와트 마법학교행 열차를 탔던 마법 승강장이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영화 속 장면을 실제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영국인들의 유머감각에 슬며시 웃음이 번져 나왔다. 동남아에서 온 듯한 한 관광객도 카트 손잡이를 ‘영차’ 밀어보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백조가 된 소년의 흔적을 찾아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1편에서 주인공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행 열차를 타려고 기다리던 ‘9와 3/4 플랫폼’ 모형이 설치돼 있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끈다.
킹스크로스 역에서 워털루 역으로 향하는 빨간색 이층버스를 타고 달리다가 코번트 가든 역 인근에서 내려 잠시 걷다 보니 입구에 붉은색 깃발을 매단 웅장한 왕립 오페라하우스가 나타났다. 오페라, 발레 등 각종 공연이 수시로 열리는 이곳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 장면의 배경이 된 무대다. ‘빌리 엘리어트’는 마거릿 대처 집권 당시 영국 정부의 석탄산업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을 벌이는 광부를 아버지로 둔 빌리가 어려운 가정형편과 편견을 이겨내고 발레리노로 성장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 속에서 이 건물은 발레 ‘백조의 호수’의 주연을 따낸 빌리가 아버지와 형 앞에서 힘찬 도약의 몸짓을 선보이는 장소였다. 왕립 오페라하우스 안에는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런던에 상경한 빌리가 입학 오디션을 봤던 왕립 발레 스쿨도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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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 오페라하우스 인근 코번트 가든 시장에서 호프향이 풍부한 잉글리시 에일 맥주로 목을 축이고 서머셋하우스를 향해 걷는다. 영화, 미술, 공예품 등 각종 전시회가 열리는 서머셋하우스는 건물 뜰의 바닥분수로 유명한데, 겨울이면 분수대 일대를 꽁꽁 얼려 만든 스케이트장을 시민에게 개방한다. 서울로 치면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라 할 만한 이곳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러브액추얼리’에도 등장해 낯익은 곳이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셜록홈즈’의 배경으로도 등장한 이곳 스케이트장은 매년 60만 명이 찾는 런던의 명소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면 그냥 들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좋은 곳”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런던에서 영화에서처럼


서머셋하우스에서 템스강을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런던 아이’는 런던 중심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거대한 대관람차다. 거대한 자전거 바퀴살 끝에 촘촘히 붙인 것 같은 투명한 관람차에 올라 한 바퀴를 돌며 감상한 해질녘 런던 풍경은 10년 전 런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런던 아이에서 바라보면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타워브리지와 세인트폴 대성당, 런던타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 구장’의 은빛 아치 기둥도 보인다. 영국 정부가 새천년을 맞아 파리 에펠탑과 맞먹는 런던의 명물로 만들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생각해 보니 런던아이도 영화 촬영 단골 장소다. 초능력자 스톰(제시카 알바)이 주인공인 SF영화 ‘판타스틱4’의 속편 ‘실버서퍼의 위협’을 보면 외계에서 온 파괴자 실버서퍼가 무너뜨린 런던아이를 스톰과 친구 초능력자들이 힘을 합쳐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런던은 낭만적인 영화의 배경으로만 쓰이지도 않았다. 냉전 기간 미국과 함께 자유 서방의 한 축이었던 수도 런던은 지금도 치열한 각국의 첩보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런던아이에서 지척거리에 있는 워털루 역은 맷 데이먼 주연의 첩보영화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최종편 ‘본 얼티메이텀’의 초반부에 주인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미국 CIA 첩보팀과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 무대다.

영국 역사물 드라마 마니아라면 템스강 보트투어도 권할 만하다. 템스강 하류 리치먼드에서 보트를 타고 1시간쯤 강을 거슬러 오르면 오른편으로 케이블TV 드라마 시리즈 ‘튜더스: 천년의 스캔들’의 주인공 헨리 8세가 기거했던 햄프턴 궁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희대의 바람둥이 임금 헨리 8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어졌던 궁중의 치열한 암투와 중상모략의 무대 햄프턴 궁전에는 친절하게도 한국 관광객을 위한 오디오 설명장치가 구비돼 있어 역사 속 여행을 도와준다. 템스 강변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거나 카누, 카약 등 수상 레포츠를 한가로이 즐기는 런더너들의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도 보트 투어의 또 다른 묘미다.

런던=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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