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男과 女, 폐쇄된 공간서 한판 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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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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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 맞선 조카딸 다룬 비극 ‘안티고네’
인류 번식 둘러싼 가상 법정투쟁 ‘인간’
닮은 구도 색다른 분위기 두 연극 눈길

베르나르 베르베르 원작의2인극 ‘인간’. 무대 사방의4각 형광기둥이나 무대와 객석 사이에 나타나는 레이저빔 창살을 통해 투명 유리상자 안에 갇힌 인간의모습을 연출했다. 사진 제공 파파프로덕션
베르나르 베르베르 원작의2인극 ‘인간’. 무대 사방의4각 형광기둥이나 무대와 객석 사이에 나타나는 레이저빔 창살을 통해 투명 유리상자 안에 갇힌 인간의모습을 연출했다. 사진 제공 파파프로덕션
폐쇄된 사각의 공간에서 한 쌍의 남녀가 불꽃 튀는 맞대결을 펼친다. 여자는 뜨거운 감성의 창끝을 세우고 남자는 차가운 이성의 방패로 맞선다. 남자는 여자를 순한 양처럼 길들이려 하지만 여자는 결코 길드는 법 없는 고양잇과 동물처럼 사나운 발톱을 세운다. 소포클레스 원작의 그리스비극을 무대화한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안티고네’(김승철 연출)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동명 희곡을 무대화한 ‘인간’(김동연 연출)이다. 두 연극 사이에는 2500여 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전자는 비극이고 후자는 희극이라는 장르의 차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둘의 구조는 너무도 닮았다.

‘안티고네’는 테바이의 왕인 크레온과 그의 조카딸 안티고네의 대립을 다룬 고전. 크레온이 국가반역죄를 저지른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하지만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한 뒤 두 사람이 벌이는 논쟁이 핵심이다. 크레온이 국가와 이성을 대표하는 ‘인간의 법’을 대표한다면 안티고네는 자연과 감성을 대표하는 ‘신의 법’을 대표한다는 독일철학자 헤겔의 분석 이후 둘의 대립에 대해선 숱한 해석이 쏟아졌다.

이번 작품은 그 둘의 대립을 극한까지 몰고 프랑스 실존주의 극작가 장 아누이의 작품(1941)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바닥엔 흙이 깔리고 사방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사각 구조물 안에서 안티고네(박윤정)와 크레온(박완규)이 성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맞붙도록 연출함으로써 하이데거가 ‘인간존재의 섬뜩함’이라 표현했던 분위기를 외형적으로 극대화했다. 1만5000∼2만 원.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선돌극장. 02-814-1678

‘인간’은 외계인에게 수집돼 유리관 안에 갇힌 냉소적 과학자 라울(이화룡, 전병욱)과 낭만적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김채린, 손희승)라는 남녀의 대결을 그렸다. 둘은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기 시작해 사사건건 논쟁을 벌이다 핵전쟁으로 지구가 폭발하는 바람에 남겨진 최후의 인류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둘의 논쟁은 ‘번식을 통해 인류를 존속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존속을 지지하는 사만타와 반대하는 라울의 가상 법정투쟁으로 비화한다. 무대 사방에 설치된 네 개의 야광기둥으로 표현된 유리상자 안에서 둘은 주도권싸움과 영역다툼을 펼친다. ‘안티고네’의 투박한 철조망이 뜨거운 격투장이라면 ‘인간’의 세련된 유리관은 차가운 시험관 같다. 웃음을 걷어놓고 논쟁의 무게만 놓고 본다면 ‘인류’가 더 심각해야 하건만 분위기는 정반대다. 한없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3만 원. 8월 29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02-747-207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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