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삼복 ‘복달임’ 다가온다고…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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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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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부터 민어는 그렇게 울었다

민어는 최소 10kg이 넘어야 맛이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민어는 최소 10kg이 넘어야 맛이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번을 울어서/여러 산 너머/가루가루 울어서/여러 산 너머/돌아오지 말아라/돌아오지 말아라/어디 거기 앉아서/둥근 괄호 열고/둥근 괄호 닫고/항아리 되어 있어라/종소리들아’ <서정춘의 ‘종소리’ 전문>》

한여름 민어 떼는 왜 울까. “우웅∼우웅∼” 왜 바다 밑에서 소 울음소리를 낼까. “꽈악∼과악∼” 개구리 쉰 울음소리를 토해낼까. 사람들은 바닷속에 긴 대롱을 꽂는다. 그리고 바다 진흙바닥에서 울리는 민어 떼의 달뜬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민어 울음소리는 쉽게 대롱 속에 모아진다. 곧 민어 떼가 우는 곳이 가늠되고, 그곳에 그물이 던져진다.

민어는 부레로 소리를 낸다. 민어부레는 커다란 소리울림통이다. 근육질의 배 속 공기주머니이다. 민어는 부레를 힘껏 부풀려 뭉툭한 소리를 만든다. 생김새가 소의 등골이나 지라 비슷하다. 부레는 맛있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찜으로 먹어도 쩍쩍 입에 달라붙는다.

부레는 잘게 썰어 볶으면 진주 같은 구슬이 된다. 바로 아교구(阿膠球)가 그것이다. 아교구는 보약 재료로 쓴다. 부레 속에 소를 채워 찜을 한 어교순대도 황홀하다. 오이 두부 쇠고기 따위를 소로 박는다. 부레는 말렸다가 풀을 만들면 초강력 접착제가 된다. 천년 간다는 부레풀(魚膠·어교)이다. 전통 활이나 나전칠기 자개장 만들 때 필수다. 놀부가 그렇게 탐을 냈던 화초장도 틀림없이 민어 부레풀을 썼을 것이다.

민어는 7, 8월에 알을 낳는다. 인천 앞바다 덕적도 부근이 알을 낳는 곳이다. 민어는 6월이 가장 맛있다.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부드럽다. 회는 복사꽃 연분홍 색깔로 발그레하다. 두께두께 어슷하고 큼직하게 썰어야 제맛이 난다. 잇몸에 닿는 뭉툭한 촉감이 좋다. 윗니 아랫니 사이에 뭉툭하게 짓눌리는 느낌이 저릿하다. 달짝지근하고 살살 녹는다.

요즘 민어 암컷 몸은 터질 듯 알이 꽉 찼다. 영락없이 ‘둥근 괄호 열고 닫은’ 항아리이다. 암컷 한 마리가 한 해 100만∼200만 개의 알을 낳는다. 하지만 민어는 수컷이 맛있고 비싸다. 암컷은 알이 꽉 찬 대신 살이 푸석하다. 수컷은 기름이 자르르하고 살이 통통하다.

민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비늘과 쓸개를 빼고는 다 먹는다. 육지의 소(牛)나 마찬가지다.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자그마치 20여 곳이나 된다. 그래서 백성 ‘민(民)’자가 붙었는지 모른다. 백성물고기, 즉 ‘국민물고기’인 것이다. 민어 껍질은 전을 부치거나 살짝 데쳐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하다. 데친 껍질에 밥을 싸서 먹어도 기가 막히다. 지느러미뼈와 가장자리 살은 뼈다짐으로 먹는다.

민어는 펄펄 뛰는 활어보다 어느 정도 숙성된 선어(鮮魚·냉장된 것)가 맛있다. 민어는 그물로 건져 올리는 순간 성질이 급해서 죽는다. 곧바로 피를 빼고 하루 정도 숙성시키는 게 좋다. 민어 뱃살은 기름기가 있어 쫄깃하고 구수하다. 회는 된장에 찍어 먹거나 묵은지에 싸 먹는다.

민어 알은 ‘봄 숭어알, 여름 민어 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란으로 으뜸이다. 참기름을 몇 번이고 발라가며 그늘에서 말린다. 생각만 해도 침이 괸다.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민어 뱃살 안쪽 좌우에 붙어 있는 가슴살 ‘갯무레기’는 단단하면서도 맛이 깊다. 쫄깃하고 사각거린다. 차지고 감칠맛이 있다. 회로는 수컷 민어 가슴살 갯무레기와 뱃살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목포영란횟집(061-243-7311)은 민어의 소림사라고 할 수 있다. 막걸리식초로 만든 초장 맛도 일품이다. ‘영란’은 여주인 이름을 딴 것이다. 목포시 중앙동 삼화횟집(061-244-1079)도 이름났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건너편 삼학도(02-584-4700·지하철3호선 남부터미널역 2번 출구)와 서울 강남구 논현동 리츠칼튼호텔 건너편 먹자골목에 있는 노들강(02-517-6044)도 발걸음이 붐빈다.

민어는 임금님 복달임 음식이다. 조선시대 삼복 복달임으로 첫째 민어탕, 둘째 도미탕, 셋째 보신탕을 쳤다. 복날이 오면 양반은 민어탕을, 상놈은 시냇가에 모여 보신탕을 즐겼다. 민어탕은 쑥갓 애호박 미나리 팽이버섯 등에다가 고추장을 풀어 끓인다. 참기름 등 강한 양념을 넣으면 고유의 맛이 사라진다. 맛이 깊고 담백하다. 뜨거울 때 먹어야 노란 기름이 굳지 않아 시원한 느낌이 든다. 민어구이 민어저냐 민어조림 민어지짐이 민엇국 등 뭐를 해먹어도 민어는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민어 어만두도 일품이다. 민어살을 저민 조각에 소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만든 뒤 그것에 녹말을 씌워 찌면 된다. 어채는 납작하게 저민 민어 살을 오이 홍고추 표고버섯 등과 함께 녹말가루에 굴린 후 끓는 물에 데친다. 한마디로 생선을 데쳐서 온갖 채소와 어울러 먹는 음식이다. 민어 말린 것을 얇게 저며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 먹어도 맛이 황홀하다. 인천지방에선 민어대가리 등뼈 내장을 넣어 끓인 서덜이탕이 일품이다. 아가미와 내장으로 담근 민어젓갈도 있다. 쌀뜨물에 마늘만 넣고 푹 고아내면 민어곰탕이 된다.

민어는 어린이 노인 환자 여자들에게 좋은 음식이다. 소화흡수가 잘돼 허약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입맛이 나게 하고 이뇨작용을 돕는다. 민어는 최소 10kg은 넘어야 맛이 난다. 3년은 넘어야 먹을 만하다. 남도에선 민어 큰 것을 개우치라고 부른다. 민어는 보통 12∼13년 산다.

민어는 전남 신안군 임자도나 지도 부근에서 잡힌 게 으뜸이다. 양식 민어는 발밑도 못 따라온다. 요즘 흔한 중국산 점성어(홍민어)는 값은 싸지만 맛이 별로다. 옛날 임자도 사람들은 ‘한여름 민어 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지만 요즘은 점점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자연산 민어는 귀하고 비싸다. 이제 민어 떼 울음소리는 전설로만 남았다. 도대체 그 많던 민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한여름 숲 속에/자지러지는 저 울음은/오디 따 먹다 미끄러진 아이가/삭정을 간신히 붙들고/허공에 매달려/까만 시궁창을 내려다보며/겁에 질린 목청으로/아버지를 부르는 소리’ <박인걸의 ‘풀벌레 울음’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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