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신 PD의 반상일기]中, 축구 恐韓症… 韓, 바둑 恐漢症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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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바둑에서 중국의 공한증(恐韓症)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축구는 한국과의 국가대표 전적에서 11무 16패의 열세에 허덕이고 있지만 바둑은 한국을 뛰어넘고 있다.

16일 중국 산둥 성 지난(濟南)에서 열린 제11회 전국체전 개막식에서도 명암이 엇갈렸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체육 지도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축구계 전설 룽즈싱(容志行)의 손을 잡고 “중국 축구는 당신의 품격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칭찬 같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한 중국 축구의 현실과 선수들의 정신 문제를 지적하는 뼈있는 충고였다. 반면 바둑을 대표한 녜웨이핑 9단은 한껏 고무됐다. 후 주석은 “바둑이 최근 2년 동안 성적이 좋고 발전하는 기세도 매우 뛰어나다”며 녜 9단과 오랜 시간 바둑 이야기를 나눴다.

후 주석의 접견 이틀 전 중국은 제14회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구리 9단, 쿵제 8단, 치우쥔 8단이 이겨 4강에 진출했다. 한국 기사로는 중국 신예 저우루이양 5단의 막판 착각에 힘입어 반집승을 거둔 이창호 9단만 4강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이 대회 통합예선에 중국의 4배에 달하는 194명을 참가시켜 ‘인해전술’을 펼쳤지만 중국은 이를 뚫고 16강에 10명, 8강에 5명을 진출시켰다. 16강전 이후 중국 선수가 반을 넘다 보니 자국 기사들끼리 대결해서 스러지는 기사들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 같은 고민은 3, 4년 전만 해도 한국이 했던 것이다. 한국은 2003년부터 3년간 세계대회 23연속 우승을 기록했으나 올해 한중 대결에서 한국의 승률은 34% 남짓하다.

중국 바둑계의 발전에는 한국 바둑계를 철저히 벤치마킹한 노력이 숨어 있다. 세계대회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중국은 한국 기사들의 공동 연구를 눈여겨봤다. 한국 기사들은 당시 토끼회 충암연구회 등 자발적 모임을 만들어 공동 연구를 하고 있었다. 중국은 정부와 기원이 힘을 합쳐 2005년부터 국가대표팀을 꾸리고 마샤오춘 9단을 감독으로 창하오, 구리, 천야오예 같은 기사들이 의무적으로 대국과 공동 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30대 기사인 용(龍) 세대, 20대인 호(虎) 세대는 물론 10대인 표(豹) 세대들이 크게 약진했다. 중국의 10대 기사들은 한국보다 강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근근이 공동 연구 모임이 운영되고 있을 뿐 한국기원을 비롯해 어디서도 지원이나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대표 선발이나 감독 선임 소식이 들리지 않고 한국랭킹 1위인 이세돌 9단은 바둑계를 떠나 있는 등 바둑 행정은 답보 상태다.

다음 달로 다가온 LG배와 농심배에서 공한증(恐韓症)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중국이 지금처럼 압도한다면 바둑에서의 공한증은 공한증(恐漢症)으로 바뀔 수 있다.

<이세신 PD 바둑TV 편성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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