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포토샵, 양심까지 ‘뽀샵’해서야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당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회화의 몫이었다. 그런데 사진이 등장해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회화는 추상과 관념의 세계로 넘어갔다. 사진이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옮아간 것이다. 150여 년이 흐른 지금, 사진은 다시 회화의 뒤를 쫓아 관념의 세계를 넘보고 있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만 추상적 관념까지 찍지는 못한다. 카메라는 찍을 수 없는 것, 찍는 것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사랑과 우정, 시기와 질투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빛의 반사’만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이런 추상적 개념을 좋은 피사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잘 표현해낸다면 그 사진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 포토샵, 그 딜레마

디지털카메라와 함께 등장한 포토샵은 사진을 쉽사리 변형, 조작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사진가들에게는 이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추상적 개념도 실현할 수 있게 하여 ‘표현의 자유’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사진을 찍는(take)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고(make) 싶은 대로 혹은 그림처럼 그리도록 만들면서 사진의 개념과 영역도 확장시켰다. 아날로그시대에도 암실작업을 통해 이런 개념을 실현했지만 포토샵의 능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을 만드는 작업은 연출사진(making photo)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전통적 사진영역을 넘어 현대사진의 한 장르이자 미술의 한 범주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어떤 사진가는 자신을 사진가라고 부르지 말고 아티스트라 불러달라고 말한다. ‘사진’에 대한 전통적인 제약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심중을 드러낸 말이다.

○ 사진에서 포토샵은 축복인가?

최근 포토샵이 가져다주는 사진의 무한한 표현력 확대라는 이런 순기능이 의외의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포토샵으로 변형한 사진을 어디까지 ‘사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혼란과 포토샵의 오·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그것이다.

20세기 이전까지 사진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는 ‘기록성’에 있었다. 사진만큼 현실을 그대로 재현해줄 매체는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보도사진이라든지 다큐멘터리 분야 등에서 지금도 기록성은 여전히 유효한 덕목이다.

하지만 예술로서 사진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르 파괴가 그것이다. 포토샵으로 사진을 가공, 재가공하면 전혀 사진 같지 않은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지 정착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이를 두고 사진의 전통적 사실성에 익숙한 사진계가 별다른 대안 없이 새로운 형태의 예술사진을 애써 무시하는 것은 소극적인 영역 지키기나 다름 없다.

왜냐하면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이 사진을 오브제로 이용하거나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 작업으로 그림과 사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데 비해 사진계만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을 문제시한다면 사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장르로 인정하고 다양한 사진실험을 해본 뒤 논란거리를 제기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비옷보다 우산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비옷만 만들고 있다면 이는 고지식한 행위일 것이다.

포토샵의 문제점 중에는 오·남용 부분이 가장 크다. 이것은 사진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인도 포함된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경우 얼굴의 점을 없애고 턱선을 깎아 만든 사진으로 여권을 만들어 해외를 방문했다 거절당한 일이 있는가 하면 수능시험에서 수험표 사진과 본인이 달라 시험을 보지 못할 뻔한 일도 있었다. 누드 사진에 여자 연예인의 얼굴을 따다 붙여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도 대표적인 포토샵 오·남용 사례다. 이처럼 만들어진이 인터넷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하루에도 수없이 유통되는데 상당수 사진이 진위 여부를 알기 힘들다는 데 그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사진계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한국사진작가협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대략 198개 정도의 사진 공모전이 있고 기타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공모하는 사진전을 포함하면 200개가 훨씬 넘는다. 이곳에 출품되는 사진 중 상당수는 포토샵으로 수정 작업을 거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화상에 나타난 간단한 먼지 제거에서부터 색의 변환을 통한 효과 극대화, 없는 상황을 만들어 붙이는 재창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급기야 올해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는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조작이 발견돼 대상을 받은 작품에 대한 수상 취소 논란이 벌어졌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이미 2005, 2006년에도 있었다.

○ 포토샵이 유죄인가?

사진이 사실 유무를 알릴 때 수정이나 조작이 있다면 진실은 왜곡되고, 객관적인 증거자료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보도사진이나 다큐멘터리의 이미지를 미화하거나 조작하는 순간 그 사진은 기본가치를 상실할 뿐 아니라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일반인도 연예인 누드사진 조작에서 보듯이 대중을 속이거나 특정인의 명예까지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윤리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예술행위로서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 변형은 ‘자유로운 표현’이 된다. 그 결과물인 사진작품 또한 사람들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평가하면 그뿐이지 지탄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중앙대 사진학과 김영수 교수는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사진, 작가의 주관이 뚜렷이 옮겨지는 순수예술사진에서는 이미 포토샵이 대세”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

결국 포토샵 문제는 일반인이든 작가든 포토샵 사용 여부를 직간접으로 밝히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공모전의 경우 주최 측이 목적과 성격에 따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다면 포토샵 문제로 떠들썩할 이유가 더 없다. 문제는 작가가 사회적 약속을 어기고 수정과 변형을 숨기거나 은폐하면서 개인의 명예와 이득을 추구하는 경우인데 그 역시 개인 윤리의 문제이지, 포토샵 사용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진공모전에서 포토샵을 허용한다면 모르지만 “예술작품이니까 사진을 맘대로 수정, 조작해도 된다”는 인식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간단해 보이는 풍경사진에도 절정의 순간이 숨겨져 있다. 해가 나무에 걸쳐지는 순간이랄지, 하늘이 붉게 물들며 긴 나무그림자를 드리운다든지 하는 모습은 그 순간에만 찍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를 포토샵으로 합성해 만들어 출품한다면 누가 계속 사진을 찍으려 하겠는가.

사진을 좋아하는 많은 이에게 기회를 던져준 포토샵. 이 프로그램의 오·남용을 묻기 전에 사진 분야마다 사진 수정이나 조작에 관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는 특정한 기준이나 의식 없이 마구잡이로 포토샵을 사용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써야 할 곳,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대한 의식적 구분을 잘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른 시일 내에 우리 사회에서 공감대가 마련돼 무분별한 포토샵 사용은 막고 예술로서 사진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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