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하여’ 20선]<5>인형의 집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 인형의 집/헨리크 입센 지음/문예출판사

《헬멜-당신의 가장 신성한 의무를 이런 식으로 저버릴 생각이오?

노라-무엇이 저의 가장 신성한 의무란 말입니까?

헬멜-그것까지 이야기해주어야 되겠소?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가 당신의 의무가 아니란 것이오?

노라-저에게는 또 하나의 그와 똑같은 신성한 의무가 있습니다.

헬멜-그런 의무는 있을 수 없어요. 도대체 어떤 의무를 말하는 거요?

노라-저 자신에 대한 의무죠.》

‘내조의 여왕’ 노라는 왜 가출했나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은 여성 해방 문제를 다룬 선구적 작품이다. 여주인공 노라가 남편 헬멜의 속물적 사랑을 깨달은 뒤 더는 그의 인형이길 거부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집을 떠나면서 나눈 대사 때문이다. 1879년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으로 작가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결혼 8년차의 가정주부이자 3남매의 어머니가 남편과 자식을 두고 가출을 감행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을 것이다. 노라는 신여성의 대명사가 됐고 여성운동의 불길을 지폈다.

그러나 이런 독법은 21세기엔 진부하다. 오늘의 관점에서 이 희곡을 읽을 때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부분은 노라의 가출이라는 사건보다 그 사유다.

노라는 오늘날 여권주의자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오히려 TV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김남주를 닮았다. 남편 헬멜이 우리집 종달새, 우리집 다람쥐라고 부를 만큼 약간의 백치미가 섞인 애교덩어리에다 3남매와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의 출세를 위해 간이라도 떼어줄 자세가 돼 있지만 남편이 누리는 권력의 단맛도 즐길 줄 안다. 그런 노라가 가출을 결심한 것은 가부장제도의 숨 막히는 억압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믿었던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던 변호사인 남편 헬멜이 새해에 큰 은행의 전무로 발탁되자 노라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남편의 출세 때문만은 아니다. 병약했던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 남편 몰래 진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비밀 채권자는 남편이 해고하려고 하는 은행 직원 크로그스타였다. 그는 자신의 해고를 막아주지 않으면 노라가 차용증서를 위조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노라는 고심 끝에 남편에게 진실을 털어놓는다. 모든 게 사랑 때문임을 알게 된다면 헬멜이 자신을 대신해 온갖 비난과 책임을 한 몸에 짊어질 것임을 믿으면서. 그러나 헬멜은 노라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는 “분별없는 한 여성의 행동 때문에 초라하게 몰락하게 됐다”며 노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아내에게 배신당했다며 욕을 퍼붓는다. 남편의 이런 태도는 마음을 고쳐먹은 크로그스타가 아무런 대가 없이 노라의 차용증서를 돌려보내자 돌변한다. 헬멜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느냐”는 둥, “당신이 한 모든 것이 오직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둥 노라를 어린애처럼 달래려 한다.

노라는 그 순간 남편을 떠날 결심을 한다. 남편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했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자기의 명예를 희생할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것”이라며 변명에 급급한 남편에게 오만정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군자라 믿었던 남편을 버리고 스스로 군자의 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마누라가 한 일”이라며 책임 모면에 급급한 남편,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이런 졸장부가 적지 않은 듯하다. 배우자의 허물까지 묵묵히 뒤집어쓸 자신이 없다면 그런 결혼이 진짜일까. 130여 년 전 이 작품의 죽비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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