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정혜신 퓨어피부과 원장

  •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7분


《정혜신(40) 퓨어피부과 원장은 대중에게 친근한 의사다. SBS ‘잘 먹고 잘사는 법’에 4년째 출연하고 있으며, 최근엔 YTN ‘사이언스 TV 토마토’ 진행도 맡고 있다. 2002년 ‘피부에 말을 거는 여자’란 책을 통해 여자들이 궁금해하는 피부 관리법을 쏙쏙 알려주더니, 올 9월에는 ‘여자를 위한 스타일 골프’란 책도 펴냈다. 예쁜 외모와 상냥한 말씨 덕분에 천생 여자다 싶은 그녀는 알고 보면 털털한 남자 같은 성격이다. 또 다소 야한 옷과 화장으로 연예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간을 쪼개 사는, 일하는 엄마이며 아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퓨어피부과에서 정 원장을 만나 그녀의 ‘삶의 여백’을 들어봤다.》

벨리댄스 … 골프… 치열한 일상탈출

○ 바쁘게 달려온 인생

흰색 의사 가운을 입었는데도 그녀는 패셔너블했다.

가슴 부위가 비교적 깊게 파인 분홍색 니트, 발목 부위에 리본 장식이 있는 레깅스 스타일의 검은색 바지, 10cm는 될 듯한 뾰족한 검은색 하이힐…. 검은색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로 눈매를 한껏 강조하고 입술은 달콤한 젤리처럼 반짝이는 분홍색 립글로스를 바른 그녀는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참 매력적이었다.

“20, 30대 때 패션의 시행착오를 두루 겪어 이젠 딱 포인트가 될 만한 옷과 구두를 고르는 안목이 생겼죠.”

연세대 의대를 나와 1999년 같은 대학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전문의가 된 정 원장은 이대 이지함 피부과에 다닐 적 방송작가 고객의 부탁으로 우연히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 응하면서 대중과 가까워졌다. 지금처럼 바쁜 삶이 시작된 계기였다. 2000년 청담피부과 원장을 거쳐 2004년 퓨어피부과를 차렸다. 2002년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연세대 의학과 대학원 박사학위를 동시에 받았다.

그녀는 “(인생은) 무조건 달리는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단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의대를 다니면서 공부하느라 어쩔 수 없이 잠을 줄인 게 시간을 알뜰하게 쓰게 된 계기가 됐어요. 밤을 새우진 않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만 잠을 자죠. 골프도 새벽시간에 시작했으니까요.”

○ 새벽 시간을 활용한 골프

정 원장은 2003년 골프를 시작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우준(10)이가 엄마 손길을 덜 필요로 할 때까지 골프를 미뤘어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까 이제 시작해도 되겠다, 싶었죠.”

그녀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3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동네 골프연습장을 찾았다. 무엇이든 ‘시작할 때부터 제대로 하자’는 성격이라 초보 ‘똑딱이’ 시절에도 남 눈치 안 보고 열심히 했다. 하긴 ‘제대로 화장하고 싶어’ 의대를 졸업하고 다섯 번이나 화장하는 법도 개인 강습을 받은 그였다.

“임신 전 40kg 후반대를 유지하다 출산 후 90kg까지 불었는데 골프를 하면서 군살이 빠져 예전의 몸매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남편이 ‘뒤태에 탄력이 붙었다’고 하네요.”

그녀는 오전 진료가 없는 월요일과 휴무일인 수요일 새벽 시간에 필드에 나간다. 새벽 골프를 마치고 돌아와 일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마음 맞는 여성들끼리 함께 골프를 하면서 친목도 다지고 자연을 벗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즐겁단다. 그녀의 평균 핸디는 15. 처음엔 중고 클럽을 사용하다가 지금은 일본 ‘미즈노’ 제품을 쓴다.

○ 벨리댄스와 운동으로 찾는 ‘여자의 매력’

너무 바쁘게 살아 우울증에 걸릴 물리적 시간이 없다는 그녀는 2년 전에는 벨리댄스도 배웠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춤을 잘 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데다 벨리댄스의 화려한 의상을 입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료를 마친 금요일 저녁 시간에 취미로 시작한 후 지난해 5월에는 친한 여자 치과의사와 함께 ‘전국 아마추어 벨리댄스 경연대회’에도 나갔다. 비록 입상은 못했지만 예쁜 옷을 입고 큰 무대에 서서 춤을 추는 게 무척 행복했단다.

“벨리댄스는 골반을 이용하는 춤이어서 동작이 섹시해요. 함께 배우는 50, 60대 어르신들도 늘어진 배를 자신 있게 내놓고 춤을 추는데 여자들끼리만 있어서 전혀 창피하지 않고 재밌어요. 특히 벨리댄스는 엉덩이 뒤쪽과 허벅지 등을 탄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골프에도 큰 도움이 되지요.”

그녀는 1주일에 두 번 피트니스센터에서 퍼스널 트레이닝도 받는다. 40대가 되고 나니 근력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기에 몸이 역부족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 가정에서 찾는 삶의 여백

이렇게 바쁜 엄마를 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준이가 이중성을 보이는 것 같아요. 학부모 모임에 나가 보면 아들이 평소 엄마 자랑을 많이 한대요. 정작 제게는 ‘엄마는 왜 그렇게 바빠’라며 싫은 내색을 하거든요. 그런데 아들도 엄마를 닮나 봐요. 아이스하키도 열심히 하고, 최근에는 뮤지컬 오디션도 봤더라고요.”

정 원장은 일요일에는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오전엔 아들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응원하러 경기 고양시 일산의 아이스링크를 찾고, 오후엔 숙제를 도와준다.

결혼 15년째를 맞은 남편 심재호(45) 재활의학과 원장과는 그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삶의 원칙을 만들었다. 그 하나가 남편 병원과 자신의 병원, 집을 모두 같은 동네에 둬 가족의 동선(動線)을 짧게 한다는 것. 또 부부가 딴 생각을 하며 상대방에게 요구만 하면 충돌이 생길 것 같아 ‘생각의 공감대’를 만들려 한다. 그래서 자신이 읽은 책 중 좋은 내용은 밑줄을 쳐 남편도 읽게 하고, 마음에 드는 음악은 CD에 구워 담아준다.

“매 순간이 아까워 한시라도 헛되이 쓰고 싶지 않다”는 그녀에게 앞으로 삶의 여백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그동안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젠 제가 가진 것을 남에게 줄 나이인 듯 싶어요. 제가 가진 게 따로 있나요. 주말 의료봉사를 시작하려 해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