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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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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뛰세요.
뛰면서 공간을 만드세요.
뛰다가… 손뼉 치고!”
경기 양주시의 극단 미추 연습실.
연극 ‘리어 왕’의 연습은 독특한 형식으로 시작된다.
동작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배우들이 숨쉬고 걷고 뛰는 것 같은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한다.
‘움직임이 연기의 기본’이라는 극단의 신념 때문이다.
한국 연극 100년, 기본은 극단 미추가 연극계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손진책 미추 대표는 “연극의 기본이 무엇인지 성찰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가리키는 얘기다.
셰익스피어는 정통 연극의 정수,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주제의식이 묵직하다는 평을 받는 희곡이다.
극의 도입부. 가야금, 소금 연주와 함께 정가(正歌)가 울려 퍼졌다. 이 효과음은 생음악이다. 미추가 생동감 있는 마당놀이로 이름난 극단임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어 배우들이 등장한다. 리어 왕이 딸들에게 영토를 나눠주는 장면이다. 백지를 지도인 양 가리키면서 “여기부터 여기까지의 땅이 네 몫”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세대교체의 장면이지요. 가치관 부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드러나요. 17세기 작품인데 21세기와 다르지 않지요?” 연출가 이병훈 씨의 설명이다.
인간 내면의 질투와 이기심, 권력에 대한 집착 등 ‘리어 왕’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연출가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세대 간의 갈등이다.
“우리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란 결국 앞선 사람들과 새로 등장한 사람들 간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게 아닐까요.”(이병훈 씨)
아버지 리어 왕의 존재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두 딸, 리어 왕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글로스터 백작과 세상을 뒤집으려는 글로스터의 서자 에드먼드 등 무대 위 인물들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온, 지금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관객 누구나 아는 얘기처럼 보이지만, 요즘 제대로 된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손 대표가 짚었다. 이 씨도 “셰익스피어 작품을 임의로 난도질하고 훼손하는 게 요즘 실정 아닌가”라면서 “‘리어 왕’만 해도 제대로 하려면 4시간 반 이상 걸리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요즘 연극에 맞춰 2시간 분량으로 희곡을 만들었지만, 언어를 간소화하는 대신 뼈대를 튼실하게 세우는 데 무엇보다 힘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배우 모두가 얼굴에 광대 분장을 하고 출연한다. ‘인간은 전부 광대이고 바보’라는 ‘리어 왕’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이다.
“삶이 길수록 고통도 깊을 뿐. 때늦은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만 그 인내와 고통이 길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요”라는 에드거(글로스터의 적자)의 마지막 대사에는 연극뿐 아니라 ‘인생의 기본’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4∼10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반, 일요일 오후 3시(쉬는 날 없음). 1만5000∼3만 원. 02-747-5161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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