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을 거니는 듯… 이기봉 개인전

  • 입력 2008년 9월 2일 02시 57분


묘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이기봉의 회화 ‘궁극의 영역’.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묘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이기봉의 회화 ‘궁극의 영역’.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현실이 아닌 몽환의 세계 속으로 한 발 들어선 느낌이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안개 낀 강가에 서 있는 나무도, 푸른 수조 속을 유영하는 책들도 아련하게 보인다.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에서 열리는 이기봉(51·고려대 교수)의 ‘The Wet Psyche’전의 풍경이다. 최근 해외 전시와 아트페어를 통해 주목받아온 작가의 대형 설치작업과 회화 9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속에서 하얀 책들이 헤엄치는 설치작품(‘End of the end’)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플라스틱 책으로 만들어 물속을 떠다니게 만든 것. 사랑하는 연인처럼 다가섰다 멀어지며 끝없이 맴도는 두 권의 책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인간, 사물, 자연의 경계를 다양한 재료와 기계적 장치로 형상화해온 그의 작업은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철학적 사유를 촉촉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재능 덕이다. 예컨대 짙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나무를 그린 회화와 그림 속 풍경을 오롯이 입체화한 설치작업에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모든 존재는 안개처럼 드러났다 사라진다’는 사유를 품은 작업은 논리보다 강한 힘으로 공감을 자아내고 마음을 뒤흔든다.

“내가 관심을 갖는 주요 모티브는 물과 안개다. 이들은 사물이나 존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초월적 영역에 다가서게 만든다. 평상시 드러나지 않았던 사물의 다른 측면에서 어떤 정신이나 영혼을 발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 실은 애매모호한 것일 수 있다. 그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몸담은 이 세상도 견고한 곳이 아닌, 몽상의 공간일지 모른다고 귀띔한다. 02-735-8449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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