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누에가 호랑이로 보인다면…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02분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2’ 그림=윤정주, 비룡소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2’ 그림=윤정주, 비룡소
슬하에 다섯 살배기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일 나간 사이에 방 안에 혼자 남게 된 아이는 소꿉질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이는 문밖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에 단 한 번도 문밖출입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곤경에 빠지게 될지 항상 걱정스러웠습니다. 때문에 아이를 보호하려면 바깥세상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험천만한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이가 받게 될 가혹한 폭력과 박해와 조소와 경멸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수단은 오직 그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얘야. 바깥세상은 모질고 잔인하다. 온갖 더러운 범죄와 사기와 거짓, 험난한 파도가 쉴 새 없이 넘실거리는 위험한 세상이란다. 믿을 사람은 없고, 다만 너를 헐뜯고,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사람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네가 이 방을 벗어나는 그 순간 너를 만신창이로 만들 것이야. 문밖의 세상은 그처럼 포악스럽고 교활하며 불길한 인물만 득실거린단다. 그런 세상이 밝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석기시대 사람의 유골에서 안경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너의 갸륵한 삶의 무늬가 그것으로 더렵혀지고 찢어지게 된다는 것은 젓가락을 놓쳤을 때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이야.”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제 피부를 뚫고 나갈 듯이 맹렬한 저돌성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부지 시절부터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서 어느덧 의기소침해지고, 하찮은 일에도 가위 눌렸으며, 주눅 들기를 일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열세 살을 넘기면서까지 문밖출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문득 어둡고 음습한 방안의 생활이 자신의 삶의 전부라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억울했습니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방문을 열어보았습니다. 툇마루 쪽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문을 여는 순간, 아이는 너무나 놀라 황급히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툇마루에는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아이를 마주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작은 누에 한 마리가 툇마루 위를 곰실곰실 기어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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