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고래’

  • 입력 2008년 8월 21일 02시 50분


남파된 北잠수정 간첩들 생존싸움

에어컨 안켜 공연장이 잠수정 된듯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고래’(이해성 작·연출)는 남파된 북한 잠수정 안에서 여섯 남자가 벌이는 생존 싸움을 다룬 작품이다.

1998년 잠수정을 타고 온 무장간첩 9명이 동해안으로 침투했다 잠수정이 어망에 걸려 표류하면서 한국 해군의 추격을 받자 집단 자살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계기반, 좁은 문, ‘ㄱ’자 잠수경 등 잠수정이라는 밀폐된 공간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무대에서 여섯 남자가 이념과 생존 문제로 벌이는 갈등이 객석의 공기까지 무겁게 했다.

초반부는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된다. 남한의 격납고에서 훔쳐 온 양주 콘돔 브래지어 등 선물들을 나누며 걸쭉한 성적 농담도 나누고 북한의 경직된 문화를 조롱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갈등은 잠수정이 그물에 걸린 뒤 한국 해군의 추격을 받으면서 본격화된다. 해군의 폭격과 투항 권유가 있자 항복을 하자는 선원들과 싸우거나 도망치자는 무장 대원 등 두 패로 나뉜다.

작은 잠수정 안에서 이상론과 현실론이 맞붙고 총격전에 이어 반전을 거듭하는 부분은 영화 ‘크림슨 타이드’를 연상케 한다.

냉방장치 없는 극장에서 배우들은 땀을 비 오듯 흘린다.

숨이 턱턱 막힌다. 무대와 객석은 배우들이 내뿜는 열기로 거리감이 좁혀지고 어두운 공연장은 전체가 잠수정으로 바뀐다.

잠수정의 인물들이 하나둘 삶 속에서 이탈하며 나누는 대사는 다소 현학적이기는 하지만 곱씹을 부분이 많다.

무장 대원이 정신보다 물질이 중요하냐고 다그치자 한 선원은 “살아 있다는 거, 그 자체가 욕망 아니네?”라고 응수한다.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연우소극장. 1만5000∼2만 원. 02-744-709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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