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6년 음반 사전 심의제 폐지

  • 입력 2008년 6월 7일 03시 00분


‘키다리 미스터 김’(이금희·1966년·단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 불편), ‘거짓말이야’(김추자·1971년·불신 조장), ‘물 좀 주소’(한대수·1974년·물고문 연상), ‘한잔의 추억’(이장희·1975년·가사 퇴폐), ‘고독한 디제이’(이재성·1986년·다운타운 DJ 사기 저하), ‘시대유감’(서태지와 아이들·1995년·사회비판적 가사)….

1996년 6월 7일 음반 사전 심의제가 폐지되기 전까지의 금지곡 사유는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엔 한 해에만 무려 225곡이 무더기로 금지곡 명단에 올랐다.

이유는 대부분 ‘퇴폐’(패배적, 자학적, 퇴폐적 가사)와 ‘불온’(국가안보, 국민총화에 악영향)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아침이슬’ 같은 국민적 애창곡이 금지곡이 된 이유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당시 두 노래에 붙여졌던 금지 이유는 ‘사유 없음’이었다.

1970, 80년대 LP판이나 카세트테이프 맨 뒷부분에는 ‘어허야 둥기둥기’ 같은 이른바 ‘건전가요’를 첨부해야 발매가 가능했다. 당시 음반을 내려면 곡과 가사를 먼저 공연윤리위원회에 제출한 뒤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완성품을 다시 제출해 원안대로 만들어졌는지 건전가요를 빼지는 않았는지 ‘이중심의’를 통과해야 했다.

외국곡 음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비틀스의 ‘레벌루션(Revolu-tion)’은 혁명을 비아냥거리는 가사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인을 비판한 스팅의 ‘러시안스(Russians)’는 곡명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 그래서 국내에서 발매된 오래된 외국곡 LP판을 보면 황당한 경우가 많다. 한두 곡의 금지곡을 삭제하거나 금지곡 대신 엉뚱한 곡을 집어넣어 오리지널 앨범에는 없는 곡이 들어간 ‘한국에만 있는 편집판’이 나왔던 것이다.

한국에서 공연물과 영화, 가요, 음반, 비디오 등을 심의하는 기관은 정권교체와 시대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간판을 바꿔왔다.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1966년)를 시작으로 한국공연윤리위원회(1976년)→공연윤리위원회(1986년)→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1997년)를 거쳐 영상물등급위원회(1999년∼)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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