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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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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이상했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돌연사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 날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은 더 끔찍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한 배달원과 여자가 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숨졌다. 그 주위에는 배달원이 갖고 가던 전단지가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다.
3인조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5집 ‘피시즈, 파트 원(Pieces, part one)’은 이처럼 혼란스러운 인생의 편린들을 두서없이 주워 담은 음반이다. 앞의 경험담도 이 음반에 새겨져 있다. 최근 녹음이 없을 땐 빈소 가기 바쁠 정도로 사고가 많았다. “정말이냐”고 되묻자 한 번도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은 기자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거침없이 사회를 비판하고 사랑도 무겁게 표현했던 이들은 이번 앨범에서 ‘구원’이라는 주제를 들고 돌아왔다. ‘에픽하이’의 타블로(28), DJ투컷츠(27), 미쓰라진(25)을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DJ투컷츠=4집은 너무 ‘다크(dark)’했죠. 앨범 전체가 우울해서 그런지 ‘죽고 싶다’ ‘내가 싫다’는 등 자괴감에 빠져 있는 팬들에게서 수많은 e메일을 받았어요.
▽타블로=최근 일련의 사고들을 접하면서 힘겹고 어둡게 사는 친구들, 심지어 자살마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번 앨범을 듣고 좀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록의 느낌을 가미한 타이틀곡 ‘원’은 ‘죽음 속을 헤매던 널 내가 구해줄게’라는 가사처럼 구원을 소재로 삼고 있다. 16곡이 담긴 새 앨범에는 ‘브레이크다운’ ‘에이트 바이 에이트’ 등 독설도 여전하다. 이들은 “말장난하고 싶었고 그게 랩”이라고 적당히 눙치지만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가사에 얼마나 치열한 삶이 들어 있느냐는 질문에 사뭇 진지해진다.
▽DJ투컷츠=혁명을 외치는 뮤지션에게 혁명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쓰라진=사회 문제는 정부도 해결 못해요. 여러 주제를 화두에 올릴 수는 있지만 저희는 해결사가 아닌 메신저일 뿐이죠.
▽타블로=저 요즘 TV에서 보신 적 있어요? TV 출연으로 뭔가를 얻었다면 그건 3년 전이겠죠. 요즘 1집 데뷔곡 ‘아이 리멤버’를 들으면 지금보다 100배는 더 대중적이에요. 변했다면 덜 대중적으로 변했고 인지도를 얻은 것일 뿐, 우리 음악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어요.
7년 전 서울 홍익대 근처 클럽을 전전하던 악동들은 어느덧 ‘거물’이 됐다. 지난해 4집이 12만 장 팔리며 앨범 판매 ‘빅3’에 오르더니 이번 앨범은 공개 이틀 전 전곡의 음원이 유출되는 사고를 겪었다. 물론 본인들은 ‘거물’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타블로=관객이 3, 4명씩 있던 그때가 그립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없고 ‘음악’만 있던 때는 그리워요. 정말이지 연예인이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DJ투컷츠=아직까지 방송에 나가서 연예인들과 얘기하는 게 신기해요. 미쓰라진이 TV에 나온 걸 보고 왜 쟤가 저기 있는 거야? 해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니까요. 마치 합성한 것처럼…. 연예인 연락처도 4명밖에 몰라요.
▽미쓰라진=스타는 빛이 나야 하는데, 우리처럼 빛이 나지 않는 애들이 있나요. 뭐, 무광택이면 어때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인생의 작은 고비를 넘겨준 음악으로 기억된다면야.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