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비극 현장 건청궁 복원

  • 입력 2007년 10월 18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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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현장 `건청궁` 100년 만에 복원. 동아일보 안철민기자
명성황후 시해현장 `건청궁` 100년 만에 복원. 동아일보 안철민기자
1887년 국내 최초로 전깃불이 들어온 근대화의 상징 공간,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한 비극의 현장. 서울 경복궁의 건청궁(乾淸宮)이 약 100년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문화재청은 2004년 6월 건청궁 복원 작업을 시작했으며 18일 공사를 끝냈다. 일반인 관람은 20일부터다.

이번에 복원된 건청궁은 고종의 침전이었던 장안당(長安堂), 명성황후의 침전이었던 곤녕합(坤寧閤), 부속 건물인 복수당(福綏堂) 등 20여 개 건물로, 대지 약 1000평에 연건평 약 300평.

건청궁은 1873년 고종이 조성한 궁궐 속의 작은 궁궐. 아버지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치적인 독립을 꾀하기 위해 고종은 경복궁 북쪽 깊숙한 곳에 건물을 지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건청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고 건청궁은 그 후 방치되다 1908~1909년 경 철거됐다.

이번에 복원된 건청궁은 당시 모습대로 사대부 양반가의 양식을 살려 단청(丹靑)을 하지 않았다. 복원 공사를 맡은 대목장 신응수 씨는 "궁궐 건물은 모두 화려한데 건청궁은 단청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담백하고 깨끗하다"며 "건축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살리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곤녕합은 단청이 없어 소박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비극의 아픔이 전해 오는 듯하다. 건청궁 내부 오른쪽에는 일본인들이 명성황후의 시신을 불 태웠던 작은 언덕(녹산·鹿山)이 있고 그 앞에는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明成皇后殉國崇慕碑)를 세워 놓았다. 장안당 마당에는 고종이 좋아했던 경남 산청의 감나무 2그루와 매화나무 2그루를 심었다. 산청 감은 고종이 즐겨 먹었다고 해서 고종시(高宗枾)로 부른다.

관람은 경복궁 인터넷 홈페이지(www.royalpalace.go.kr)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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