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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8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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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백가흠(33·사진) 씨의 새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는 이 질문에 답한다. 우리는 ‘현실의 무간지옥’(평론가 차미령)에 살고 있다.
작가는 신문 사회면의 사건 사고를 소설로 옮긴다. 하루나 이틀이면 잊혀지는 기사들은, 백 씨의 소설에서 ‘지옥 같은 세계’로 재구성된다. 가령 단편 ‘웰컴, 베이비!’ 속 ‘웰컴 모텔’의 투숙객들이 그렇다.
보육원에서 자랐고 열여섯 살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한 부부. 동네 PC방 게임대회를 전전하며 입에 풀칠하면서 아이는 낳기만 하면 버린다. 웰컴 모텔에 투숙했을 땐 네 번째 배가 부른 상태였다. 동성애자인 모텔 주인은 죽은 동성 애인의 아이를 맡아 키우면서 살아가고, 아이는 모텔 방 남녀의 성교 장면을 옷장 안에서 훔쳐보는 게 일이다. 쌍둥이 소설 격인 ‘웰컴 마미!’에서는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영아 매매를 시도하는 여자, 10대에 낳은 아이를 집 안에 버려두다시피 하고 밖에서 며칠씩 생활하는 여자 등이 등장한다.
작가는 잠시나마 진짜 삶을 잊고 싶어 하는 소설 독자들을 ‘배신’해 버린다. 비판도 옹호도 없는 차가운, 그러나 적나라한 작가의 묘사를 따라 읽다 보면 여러 번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정말 읽기 힘들게 하는 것은, 소설의 상황이 잔인하고 추악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진짜 몸담은 세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제작 ‘조대리의 트렁크’에서 주인공 조대리는 고교 동창 장영수가 버리고 간 노모를 떠안기로 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어수룩한 조대리에게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백가흠 씨는 “계획하고 열망했던 것이 점점 바닥나는 기분이 들어서 착잡하기만 하다”고 말하지만, ‘조대리의 트렁크’를 비롯한 이 책의 단편 몇 편은 그가 바닥난 곳에 새로운 ‘무엇’을 채우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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