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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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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유럽 땅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명 박물관이 비장(秘藏)하고 있던 유럽의 명화들. 유럽의 미술사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 그 명품들을 서울에서 만난다는 건 신선하고 행복한 경험이다.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동아일보사 국립현대미술관 등 공동 주최). 유럽 미술의 명품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연일 이어지면서 이번 전시가 올여름 최고 전시로 자리 잡았다. 10일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11, 12일 주말에는 7000여 명씩 몰렸을 정도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개관 이래 하루 최다 관람객 신기록이다.
무엇이 이렇게 관람객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이번 전시의 힘은 ‘새로움’ 또는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티치아노 등 16∼18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거장들의 작품 64점은 우리에게 약간은 낯선 작품들. 그러나 그 낯섦이 오히려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되고 있다. 낯설지만 위대한 미술 문화를 만난다는 그 행복한 경험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품은 루브르박물관이나 오르세미술관 소장품보다 더 접하기 어려운 명품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관람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화면 속 꽃다발을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 꽃들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화면 위쪽의 꽃들은 화병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이 꽃들은 한 계절에 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비사실적이다. 일종의 허구다. 아름다운 꽃에는 역설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꽃들을 보라. 화려한 꽃도 너무 쉽게 시들고 만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삶의 덧없음이다.
젊고 화려한 이 여인은 누구인가. 누가 그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도록 했을까. 초상화의 주인공인 마리 드 부르고뉴는 부르고뉴 공국의 유일한 상속녀로, 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막시 밀리안 1세와 결혼했다. 그녀는 22세 때 사냥 도중 말에서 떨어져 말에 밟혀 죽고 말았다. 막시 밀리안 1세의 그리움은 사무쳤고 12년 뒤 사랑하는 여인의 생전 모습을 그리도록 했으니 그 애틋함이 화면에 가득하다.
주름살 하나, 땀구멍 하나까지 어떻게 이토록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작가인 데너에겐 땀구멍까지 세밀하게 그렸다고 해서 ‘땀구멍 데너’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작품은 한때 ‘모나리자’보다 더 높게 평가받았다. 그런 작품이 왜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18, 19세기를 지나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주관적으로 그리는 쪽으로 유행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화면 위의 원 두 개는 무슨 의미인가. 화면의 분위기는 왜 이렇게 기묘한 것일까. 원 속에는 각각 7월과 8월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실제 야채시장을 묘사하는 것보다 계절을 상징하는 데 역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야채시장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마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 표현하고 아이의 표정도 낯설게 그려냈다. 화면이 차갑고 그로테스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독특함이 인기의 비결이다.
흰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벨라스케스·캔버스·1656년경)
한 번은 가까이서, 한 번은 멀리서 감상해 보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장미 모양의 장식과 검은색 레이스로 치장된 흰 옷, 어깨 위로 물결치듯 흘러내리는 곱슬머리 금발. 그런데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별다른 장식이 없다. 이 작품의 진정한 장식은 화가의 노련한 붓 터치에 있다. 가까이에서 세밀하게 보면 그저 불분명한 선들이 그러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보면 그 선들이 흰색 원피스의 주름으로 되살아난다. 그저 쓱쓱 그은 선 몇 개가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비엔나의 프라이융 남동부 풍경 (카날레토·캔버스·1758∼1761년)
그림자가 매우 진하다. 과연 몇 시일까. 그림 속 어디에 그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18세기 비엔나 프라이융의 거리가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짙은 그림자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음이 분명할 텐데, 과연 몇 시쯤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그림 한가운데 시계탑의 바늘이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지 한 번 찾아보시길.
방은 어두운데 왜 촛불이 꺼져 있을까.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사과 깎는 여인은 삶의 미덕이었다. 그렇다면 좀더 밝게 표현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화면은 어둡고 우울하다. 여인의 검은 두건,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이 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화가는 기존의 관습적인 미덕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불 꺼진 촛불이었다. 불 꺼진 촛불이라는 낯선 이미지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소=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내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기간=9월 30일까지(월요일 휴관). 매일 오후 8시 반까지
△관람료=초등학생 7000원, 청소년 9000원, 어른 1만2000원
△문의=02-2022-0600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작품설명 들으며 관람하니 더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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