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무게 잡는 책은 받아도 부담스럽다고?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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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최내현 월간 ‘판타스틱’ 발행인

“세상에서 책 선물이 제일 싫다, 그건 일종의 폭력”이라던 얼마 전 너의 말은 내겐 일종의 충격이었어. 만날 하는 뻔한 선물보다는 책을 선물하는 풍조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였거든. 사실 네 말도 일리는 있지. 대개 책을 선물하는 사람들은 인생 지혜가 담겨 있다는 고매한 책이나, 종교적인 책이나, 혹은 자기도 안 볼 엄청나게 두껍고 어려운 책을 사 주는 경우가 많거든. 첫 번째는 선물을 가장한 ‘훈시’일 것이고, 두 번째는 선교활동이며, 세 번째는 선물 주는 사람을 빛내 주는 소도구로 책이 이용되는 것이니, 받기 싫을 만도 하지.

그러다 보니 으레 책 선물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어른이 젊은이에게, 회사 사장이 직원에게 주는 이상한 것이 되어 버린 것 같아. 하지만 세상엔 그런 책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새파란 젊은이가 어르신에게 책 선물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세상 착하게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책’이라면 받는 사람이 부담도 덜 되고 말이야. 그래서 SF 계열의 책 몇 권을 소개해 줄까 해. 선물은 아니고 소개만.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책읽기)가 우선 떠오르네. SF 하면 양자물리학과 로봇이 나오는 어떤 것이라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뜨리며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책이야.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라 요약은 불가능하지만,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자라거나, 한마디로 지나간 성경 구절에 천착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를 상상해 본다거나, 정신력이 최고조에 이른 천재들끼리의 스펙터클한 대결이라거나, 아무튼 상상의 힘이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거야.

조금 정통(?)하게 우주나 전쟁이 나오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면 ‘마일즈의 전쟁’(행복한책읽기)이 괜찮을 거야. ‘스페이스 오페라’, 우리말로 ‘우주 활극’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작품인데, 꾀돌이 주인공이 어려움을 헤치고 우주의 실력자로 성장해 가는 내용이야. ‘우주활극’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여성 작가의 빼어난 캐릭터 묘사와 위트가 돋보이니 그 선입견이 멋지게 뒤집어질 수도 있지. 조금 진지한 걸 원한다면 어슐러 르귄의 ‘빼앗긴 자들’(황금가지)도 괜찮아. 외계 여행 중에 마주치는 두 가지 사회, 자본주의·전체주의적인 사회와 아나키즘적 사회의 대비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거든.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를 추천할 수 있어. 1954년 작품인데, 핵전쟁 이후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람들이 흡혈귀로 변해 가지. 그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싸워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정상과 비정상이란 무엇인지, 하는 여러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거야.

어쨌든 책을 선물할 때는 인생의 양식이 되는, 무게 잡는 책이 아니라 소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대중소설이면서도 현실 너머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SF나 판타지 계열 책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야. 올여름에는 마침 용이 등장하는 로맨틱 판타지 두 작품 ‘퍼언 연대기’(북스피어)와 ‘테메레르’(노블마인)가 책 시장에서 격돌을 예고하고 있으니, 책 선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To: 세상에서 책 선물이 제일 싫다는 후배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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