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7년 한국개발금융회사 발족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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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대를 받으며 태어난 사람은 행복하다. 존재 자체로 기쁨을 줄 수 있으니. 물론 그 기대가 부담스러워질 때도 있지만….

1967년 4월 20일 발족한 한국개발금융회사(KDFC·Korea Development Finance Corporation)도 축복과 기대 속에 탄생했다. 한국 최초의 민간개발금융기관인 KDFC는 국내외 산파역의 오랜 정성으로 세상에 나왔다.

정부는 1965년 세계은행(IBRD)에 설립 지원을 요청했고, 같은 해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대표단까지 파견했다. 당시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에는 설립준비위원회까지 구성됐다.

그렇게 탄생한 KDFC에 대한 기대감의 크기는 그 ‘생일날’ 발간된 동아일보 사설(社說)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시중 은행이 실질적인 국영은행임에 비해 이 회사는 상법에 준거하여 설립된 민유민영(民有民營)의 공개 주식회사여서 민간경영의 자주성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는 정부가 대주주로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휘둘러 간섭하고 있는 기존 은행의 경영과 그 당연한 결과로 허다한 불합리성과 모순을 지닌 은행 경영상과 좋은 대조가 될 것이고 경영 합리화를 위한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다.”

KDFC가 그런 기대에 어떻게 부응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부담스러워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단 스스로 기대감을 키워나간 흔적은 뚜렷하다.

장기 설비자금의 재원 역할을 하면서 한국 기업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근간으로 하다가 1980년 자연스럽게 ‘한국장기신용은행’으로 진화했다. 창립 20주년이던 1987년에는 ‘봉사하는 은행’ ‘내실 있는 은행’ ‘앞서가는 은행’을 다짐했다.

10년 후에는 그 기대를 더 키웠다. 1997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3년 뒤인 2000년에는 자산 43조1000억 원, 당기순이익 1900억 원을 실현시켜 양적 질적으로 경쟁력 1등 은행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청천벽력’과 같았던 외환위기는 운명을 바꿨다. 외환위기에 따른 자금난으로 1998년 국민은행과 합병했다. 2000년을 맞지도 못한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의 어떤 기대를 받고 있을까. 또 그것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을까. 혹시 나 자신에게 허황된 기대를 품고 있지는 않은가.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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