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시인“왜 시를 쓰냐고요? 아름다움에 허기져서”

  • 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신인에게 청탁해 준 잡지사가 고마워 13평짜리 방에 틀어박혀 이틀 밤낮을 꼬박 시를 써서 보냈고, 그러고 나서야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이 모락모락 피는 밥솥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기도 하였다.”

박형준(41·사진) 시인이 산문집 ‘아름다움에 허기지다’(창비)를 냈다. 우리 시단의 튼실한 ‘허리’인 그는 낯선 시적 상상력을 고운 언어로 풀어내 온 시인이다. 그의 산문 역시 담백하면서도 결이 곱다. 시인의 개인사와 문학적 우정을 나눈 친구들, 시평 등이 책으로 묶였다.

시인이 쓰는 시인론과 작품론도 맛깔스럽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솔직하게 전하는 삶의 이력이다. 일찍이 책상에 앉아 살 것이라고 결심했던 청년은 미친 듯이 시를 쓰면서 젊은 날을 보낸다. 이제 웬만큼 자리 잡은 시인은, 밥 먹고 살자고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자에게 자신의 시집을 보냈다가 되돌아 온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고통스러워한다.

‘왜 시를 쓰느냐’는 물음에 “아름다움에 허기져서”라고 답하는 시인.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이란 신산(辛酸)한 삶에서 나오는 것임을 그는 잘 안다. 그래서 체험은 없고 말만 넘쳐나는 최근 젊은 시단의 흐름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그도 2일 세상을 떠난 오규원 시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서울예대 재학시절 스승을 찾아갔을 때 그가 제출한 시 원고 몇 편이 접혀 있었다. ‘잘 써서 접어놓으신 건가 보다’ 지레짐작했던 시인은, 그러나 “이것들은 다 버려라”라는 스승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견자(見者)와 날 이미지 시’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그는 “지난 20년간 하늘을 날기 위해 무던히도 절벽에 서 보았지만 늘 땅바닥에 간신히 내려앉곤 했다. 내가 썼던 시들은 선생님께서 빨간 펜으로 그어 땅바닥에 떨어진 깃털들을 운 좋게 주운 것에 불과하다”고 겸허하게 고백한다.

이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시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너무나 사소한 존재여서…그들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들리지 않음, 이 들끓는 침묵에의 헌신이 세상의 소란을 가라앉힌다.” 그가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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