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합격한 시각 장애인 이현아 양

  • 입력 2006년 11월 6일 18시 08분


코멘트
6일 중앙대 국악대학에 합격한 이현아양이 김성녀 학과장의 선물로 패션 안경을 맞추고 있다. 강병기기자
6일 중앙대 국악대학에 합격한 이현아양이 김성녀 학과장의 선물로 패션 안경을 맞추고 있다. 강병기기자
6일 중앙대 국악대학에 합격한 이현아 학생이 부모와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강병기기자
6일 중앙대 국악대학에 합격한 이현아 학생이 부모와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강병기기자

▷이현아, 2006 동아 국악콩쿠르 은상

"현아가 언제까지 애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대학생이 되다니…."

6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총장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이 대학 국악대학에 입학한 이현아(18·서울맹학교 3학년) 양의 어머니 김희숙(47) 씨는 손수건으로 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임신 8개월 만에 600g의 미숙아로 태어난 이 양은 인큐베이터에서 두 번의 수술을 받던 중 안구가 파괴돼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이 양은 올해 6월 동아국악콩쿠르에서 학생부 정가부문 은상(2등)을 수상한 유망주. 국악중고교 진학을 꿈꿨지만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 이 양은 "만일 국악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다른 시각장애인들처럼 안마사가 되어 어려운 집안살림을 돕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본보 7월8일자 A8면 참조)

"어느 날 KBS 제3라디오에 출연한 현아 양의 정가곡을 들었어요. 심연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현아 양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도 생각이 나 부끄러움에 밤새 잠을 못 이뤘어요. 이런 재능을 가진 학생이 앞을 못 본다는 이유로 원서접수조차 거부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박범훈 총장)

이 양은 이 대학에 장애인 특례입학이 아닌 일반학생들과 경쟁하는 수시모집에 응시했다. 한 명의 시각장애인을 위해 교수 요원과 학교 시설, 점자교재를 확충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로 교수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실기 심사위원장이었던 김성녀 교수는 "소리의 길은 마라톤처럼 길고 험한 길로서 어설픈 재능으로 뛰어들면 차라리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낫다"며 "동정심이나 배려가 아니라 정상적인 경연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양은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3일 휴대전화로 합격소식을 전해들은 이 양은 "엄마~"하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을 뿐 엉엉 울기만 했다고 한다.

"엄마와 손잡고 10년 간 소리공부를 하러 다닌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친구들에게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화장실로 달려가 맘껏 울었지요."

국악 작곡가 출신인 박 총장은 "소리란 악보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배우는 '구전심수'(口傳心授)가 전통이기 때문에 현아 양은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며 "이 양이 소리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날까지 앞으로 모든 후원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총장은 이 양을 위해 6인의 후원회를 조직했다. 김동건 변호사, 신상훈 신한은행장, 신현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이사장 등이 이 양에게 한 학기 씩 등록금을 책임진다. 또한 그는 총장직을 그만 두면 이 양을 위해 정가곡을 작곡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성녀 교수는 이날 면담을 마친 뒤 이 양을 학교 앞 안경점으로 데리고 갔다. 이 양의 살짝 감은 눈을 가려줄 수 있는 예쁜 패션 안경테였다. 늘 집안에서만 지내던 이 양에게 주는 스승의 입학선물이었다.

"네가 살 길은 남들보다 월등하게 노래를 잘 하는 길뿐이란다. 내 별명이 뭔 줄 알아? '카리스마, 공갈 협박계의 거수'야. 네가 아무리 울어도 안봐줄 거야."

"예, 선생님. 저, 이제부터 시작인 걸요!"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