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내가 죽었다고?호적이 사람잡네…‘생사불명 야샤르’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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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불명 야샤르/아지즈 네신 지음·이난아 옮김/343쪽·3만5000원·21세기북스

“아버지이이이… 제가 죽었대요. 죽었대요.”

열두 살에 날벼락을 맞았다. 호적엔 ‘사망’으로 나온단다. 그것도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것으로. 야샤르의 인생은 그때부터 꼬여 버렸다.

소설가 아지즈 네신(1915∼1995)의 이름은 낯설게 들린다. 국내에는 아동 도서 두 권만 나와 있어 동화작가로만 인식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구라’가 여간 아니다. 알고 보니 ‘터키의 국민 작가’란다. 터키에선 “완전히 아이즈 네신의 소설이군”이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실화가 바탕이 됐다.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비판한 작품을 발표해 유배와 수감생활을 반복했던 작가가 감방 동료에게서 들은 사연이다. 무대는 감방. 야샤르 야샤마즈라는 사내가 새로 들어왔다. 터키어로 야샤르는 ‘살다’, 야샤마즈는 ‘죽다’라는 뜻이다. 황당한 이름에 동료 죄수들은 폭소를 터뜨리는데, 정작 야샤르의 삶의 비극은 이름에 압축돼 있다. 그에게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것.

책은 ‘생사불명 야샤르’가 감방 동료들에게 21개의 경험담을 밤마다 하나씩 풀어놓는 형식이다. 이야기꾼 야사르가 들려주는 얘기는 주민등록증 없이 살아가면서 겪는 황당무계한 사건들이다. 첫날엔 처음으로 동사무소 호적과에 갔던 열두 살의 어느 날. 부모는 1911년 결혼했는데 아들 야샤르는 1915년에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니, 말이 안 된다고 따져 봐도 소용이 없다. “호적 대장에 그렇게 써 있는데 난들 어쩌겠소?” 그렇게 말해 놓곤 공무원은 나 몰라라 한다.

다음 날 에피소드는 결혼을 앞두고 군대에 끌려간 날. 죽었다던 야샤르가 난데없이 병역기피자로 몰린다. 주민등록증은 나중에 발급해 줄 테니 입대부터 하라는 것이다. 또 그 다음 날 이야기. 제대하고 돌아와서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돈이 들어올 턱이 없다.

포복절도할 ‘구라’를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관료주의의 지독한 횡포다.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정부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하는 고무줄 원칙. 소설 속 야샤르의 분통 터지는 외침은 우습고도 기막히다. “공공기관이 하는 일이 뭐요? 학교에 입학하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라고 하고, 군대에 끌고 갈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하더니, 또 유산을 받으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라고 하고, 세금을 거두어 갈 때는 다시 또 ‘넌 살아 있어’라고 하는, 도대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를 해대는 공공기관이라는 곳은 뭘 하는 곳이냐고!”

야샤르뿐 아니다. 자수하러 갔다가 복잡한 절차 때문에 포기하는 스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아들로 호적에 올라왔는데 고치지 못하는 노인처럼 비슷하게 고생한 사람들이 감방엔 적지 않다. 감방뿐일까. 터키뿐일까. 작가의 풍부한 입담과 풍자적인 문체에 배를 잡다가도 읽고 나면 씁쓸해지는 마음, 어느 나라 독자든 마찬가지일 듯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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