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20m 빙벽 오르면 더위가 싸~악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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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인공 빙벽을 오르고 있는 최미숙 씨. 그는 빙벽 등반이 스릴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피서법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한여름에 인공 빙벽을 오르고 있는 최미숙 씨. 그는 빙벽 등반이 스릴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피서법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조금만 더….”

한여름인 7월, 방한복을 입은 최미숙(43·주부) 씨의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짧은 고함이 나온다. 상기된 얼굴에선 송글송글 땀이 흐른다.

최 씨가 한여름에 방한복을 입고 땀을 흘리는 건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영하 4도의 실내에 설치된 20m 빙벽을 오르고 있다. 피켈을 들고 있는 팔과 아이젠을 신은 다리 모두 후들거린다. 피켈을 꽂을 때마다 부서지는 작은 얼음 조각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더워요? 빙벽타세요…한 여름에 즐기는 엄동설한 레포츠

“하강할래요?”

땅에서 줄을 잡아 주며 방향을 봐 주는 확보자 김용각(49·부동산업) 씨가 묻는다.

“아직요. 빨간 선이 보여요.”

피켈과 아이젠을 얼음에 꽂는 최 씨의 움직임이 몇 차례 거듭되더니 20m 높이를 표시하는 빨간선에 닿았다.

“하강∼.”

최 씨와 김 씨가 거의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실내 빙벽장에 크게 울렸다.

○오를 때마다 짜릿

서울 강북구 우이동 오투월드는 20m 높이의 빙벽을 갖춘 국내 첫 실내 빙벽장이다. 영하의 온도와 얼음을 사시사철 유지하는 곳으로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김우선 이사는 “X게임에 익숙한 20대와 30대 초반의 등반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월 100여 명의 이용자 중 80%가 30대 중반∼50대 초반”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빙벽을 타는 이유는 오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스릴과 성취감. 도시철도공사 관제센터의 정홍석(37) 씨는 “회사 업무의 성과는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자주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렵다”며 “매주 목표 등반 높이와 속도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어 빙벽을 오른다”고 말했다.

간호사인 김정숙(41·여) 씨는 “스쿼시 등을 해봤으나 실력이 느는 게 안 느껴져 포기했다”며 “빙벽 등반은 5m, 8m, 12m 등 조금씩 목표를 올리면서 달성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빙벽 등반을 시작한 지 6개월 된 최 씨는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에만 머무는 생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일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빙벽에 오를 때마다 ‘나도 특기가 있다’는 성취감이 생기고, 가족을 비롯해 주변에 내세울 수 있는 나만의 전문 지식과 경험이 생겨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용각 씨는 사람을 믿는 느낌이 좋아 빙벽에 오르는 경우. 그는 빙벽을 오를 때 밑에서 줄을 잡아 주며 방향을 봐 주는 확보자를 믿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직업상 사람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의심도 자주 하는데 빙벽에 오를 때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확보자를 믿을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 쉽게 마음을 열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자연 빙벽에 도전하는 트레이닝 코스

겨울 산의 자연 빙벽에 도전하기 위해 실내에서 훈련 중인 이도 많다. 대부분의 자연 빙벽은 12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오를 수 있고, 기온이 높으면 안전 때문에 오르는 못하는 경우도 많다.

패션 디자이너 한영민(37·여) 씨는 매주 2, 3차례씩 실내 빙벽에 오른다. 그는 빙벽 등반 경력이 10년 됐으나 1년에 10번 이상 자연 빙벽을 오른 적은 손에 꼽을 정도. 등반 기회가 적은 탓으로 실력도 제자리 걸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실내 빙벽은 올 때마다 10여 번 오를 수 있어 등반 속도와 노하우가 향상되는 게 느껴진다”며 “이젠 피켈을 얼음에 꽂을 때 느껴지는 촉감과 얼음 냄새까지 즐길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네팔에서 15년째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는 이신석(53) 씨는 빙벽 등반 훈련을 위해 3개월 전 귀국해 매주 3, 4회씩 빙벽을 오르고 있다.

국내 히말라야 등반대를 베이스캠프까지 안내해 온 그는 “정상까지 가고 싶었지만 빙벽을 오른 경험이 없어 매번 포기해야 했다”며 “더 늦기 전에 정상에 도전하고 싶어 이곳에서 훈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빙벽교실▼

평일반(4주 20시간 화 목요일·25만 원), 주말반(4주 8시간 토요일·15만 원), 특별반(4주·25만 원). 일일등반은 3시간에 5만 원(장비 대여료 포함). 인터넷 홈페이지 www.o2o2.co.kr, 02-99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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