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27>한국무용 ‘발뒤꿈치의 미학’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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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춤에서 발뒤꿈치에 실린 감정은 전체 춤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동아일보자료사진
전통 춤에서 발뒤꿈치에 실린 감정은 전체 춤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동아일보자료사진
서양의 발레가 ‘발끝 예술’이라면, 한국 춤에는 ‘뒤꿈치의 미학’이 있다.

한국 춤에서는 발을 어떻게 놓느냐(디딤)에 따라 상체의 몸놀림이 좌우된다. 뒤꿈치는 춤의 시작이자, 손끝의 표현까지 좌우하는 신체 부위인 셈. 땅을 딛는 뒤꿈치의 감정이 풍부할수록 춤의 멋과 맛도 살아난다.

“한국 춤은 ‘음(陰)의 예술’이다. 흔히 한국 춤은 ‘등으로 춘다’고 할 만큼 앞모습(양·陽)보다 뒷모습이 중요한데, 이 ‘뒷시선’도 결국 뒤꿈치에서 시작한 감정이 등을 타고 올라가 만들어낸다. 뒤꿈치에서 시작된 흥이 등과 몸 전체에 울려 퍼지는 만큼 모든 동작의 감정을 뒤꿈치가 담고 있다. 가령 어깨춤의 경우 어깨와 팔이 덩실덩실하는 것이 아니라, 뒤꿈치가 울려서 등이 춤을 추어 만들어내는 것이다.”(배정혜 국립무용단장)

디딤은 꼭 뒤꿈치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뒤꿈치부터 내려놓는 디딤이 가장 많이 쓰인다. 특히 ‘승무’ ‘살풀이’ 등 느린 장단에서 이런 디딤새를 흔히 볼 수 있다.

뒤꿈치에 감정을 싣기 위해 수십, 수백 번씩 바닥을 디뎌가며 연습하다 보면 뒤꿈치 모양이 변하기도 한다.

배 단장은 “뒤꿈치가 커지고, 뒤꿈치 살이 밀려 뒤가 계란처럼 둥글게 튀어나온 모양이 됐다”며 “춤 잘 추는 무용수 중에 이런 뒤꿈치를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런 뒤꿈치 때문에 춤을 잘 추는 게 아니라, 이렇게 뒤꿈치 모양이 변할 만큼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춤을 잘 추게 되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무용가 조남규 씨는 “춤출 때 뒤꿈치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평소 걸음걸이에도 습관이 붙어 남들보다 구두굽이 빨리 닳는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발가락이 갸름하게 모인 발을 예쁘다고 하지만 무용가들은 발가락이 가지런히 붙은 발보다는 발가락이 쫙쫙 잘 벌어지는 발이 ‘표정’이 더 풍부하다고 친다.

그렇다면 ‘평발’도 춤을 잘 출 수 있을까?

국립무용단의 간판스타 이정윤 씨는 대표적인 ‘평발 무용수’로 꼽힌다. 그는 “한국 춤은 발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평발이다 보니 지속적인 발동작을 하다 보면 발에 피로도 남보다 빨리 오고, 같은 동작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발로 버선코 같은 곡선을 만들어내려고 힘을 주다 보면 쥐가 나는 경우도 많아 공연 후는 물론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꼭 발바닥 운동과 발 마사지를 한다는 것.

무용수의 뒤꿈치에는 수백 가지 표정이 담겨 있다던가. 무용수들의 거칠고 단단한 뒤꿈치야말로 그들이 흘린 땀과 고통의 시간을 말없이 웅변하는 옹골진 얼굴이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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