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백남준… 학창시절 피아노-책 좋아해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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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남준을 처음 만난 것은 1945년 봄에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학창 시절 그는 피아노를 잘 치고, 책을 많이 읽는 이지적이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지저분한 교복을 태연스레 입고 다닐 정도로 괴짜 같은 모습도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1984년 비디오 아티스트로 국제적으로 성가를 올린 뒤 귀국했을 때였다. 30여 년 만에 귀향한 그는 어렸을 때 쓰던 옛 서울말을 사용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2000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21세기의 첫 전시회로 백남준을 선택했다. 당시 남준이는 왼쪽 몸이 불편한 상태여서 휠체어를 탄 모습으로 전시장에 나왔다. 가슴이 아팠지만 집으로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보니 정신도 맑고 비상한 기억력으로 친구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경기도에서 백남준미술관을 건립한다고 해서 내가 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다시 그를 만났다. 2002년 그가 겨울이면 머물고 있는 마이애미로 찾아갔다. 2년 전과 달리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옆자리에 앉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는 “눈이 하나 안 보인다”고 대답했다. 당뇨 후유증으로 인해 한쪽 눈만 보인다는 말이었다. 내가 안타까워하니까 그는 “일목요연, 외눈깔이라 더 잘 보인다”고 조크를 던졌다.

그 자리에서 어떤 미술관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어떤 모양이든, 공간만 좀 넓게 하면 작품은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여 주었다. ‘투병 중에도 늘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구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남준이가 존경스러웠다. 미술관 건립 준비차 뉴욕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그는 백남준미술관이 완성되면 개관식에 꼭 참석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난 친구의 명복을 빈다.

최경한 화가·서울여대 명예교수 백남준미술관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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