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BT…이젠 CT]<上>미래 황금산업…한국의 현주소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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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600만 명을 넘어서 인기 몰이를 계속하고 있는 화제의 영화 ‘왕의 남자’에는 왕궁인 경복궁 마당에서 광대들이 한판 놀음을 벌이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 중 실제 경복궁에서 촬영된 컷은 단 한 장면도 없다. 문화재청이 경복궁 촬영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 제작진이 맞닥뜨린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준 기술은 바로 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이다.》

‘왕의 남자’ 제작진은 한 벤처기업이 개발한 경복궁의 3차원 입체영상(3D)이 담긴 ‘디지털 한양’을 이용해 전북 부안에 세워진 세트에서 촬영하기 전 화면 구상, 앵글 등을 미리 설정해 연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제작 경비가 크게 줄고 장면의 사실감도 높아졌다. CT는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과 함께 한국 산업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산업 점유율 높일 핵심기술=CT는 문화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획 제작 및 창작, 유통을 발전시키는 유·무형의 기술을 통칭한다.

문화관광부는 2003년 43조 원 규모였던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이른바 문화산업 중 CT가 기여한 부분이 약 24%(약 10조 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부는 CT 관련 매출이 2010년까지 20조 원으로 늘어나고 9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김기훈 CT개발팀장은 “지난해 세계 문화산업 규모가 1조3400억 달러에 이르는데 한국의 점유율은 그중 1.5%(202억 달러)에 불과하다”며 “CT를 활용하면 2010년까지 점유율을 4%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T와 다른 CT의 차별성=CT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IT와 가깝지만 IT의 아류는 아니다. 김성혁(문헌정보학 전공) 숙명여대 교수는 “CT는 처음부터 문화상품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는 기술을 의미한다”며 “IT의 문화적 응용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왕의 남자’에 사용된 ‘디지털 한양’의 경우 건축학자인 경기대 이상구(건축학부) 교수가 1914년 조선총독부 발행 경성부 지적원도 총 934장과 경복궁을 그린 옛 그림을 토대로 옛 한양의 주요 건물과 공간을 3D로 만들어냈다. ‘디지털 한양’을 제작한 앤포디 이돈룡 사장은 “경복궁이나 조선조 한양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컴퓨터 그래픽 기술 이전에 단청이나 품계석 등 문화재와 당대 시대상 등 풍속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방영된 MBC 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의 시나리오도 조선시대 살인 사건 수사기록 600여 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수사기록물 문화 콘텐츠’를 토대로 만들었다. 이 콘텐츠의 제작에는 역사학자가 참여했다.

▽CT는 무형의 기술도 포함=CT는 무형의 노하우도 포함한다. 문화부로부터 2005대한민국 만화대상을 받은 온라인 만화 ‘위대한 캣츠비’가 대표 사례. 이 만화를 그린 작가 강도하 씨는 5년 전부터 만화 웹진인 ‘악진’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움직여 세로로 보는 온라인 만화에 적합한 기법을 연구했다. 그는 △스크롤을 내려 한번에 보는 적당한 길이 △온라인에서 누리꾼들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 폭과 그림의 밀도 등을 창안했다.

이야기 창작을 공학적으로 풀어내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법’도 무형의 CT 분야다. 등장인물과 갈등 구조 등 시나리오 기본 요소를 제시하면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화, 영화, 게임 등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 등이 스토리텔링 분야에 속한다.

:CT란: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은 넓은 의미로 ‘문화상품의 발전을 위한 기술’을 뜻한다. CT는 크게 게임 제작 프로그램용 기술 개발이나 특수효과, 캐릭터 디자인 기술 등 특정 분야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응용기술’과 디지털음악, 스토리텔링처럼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공통으로 요구되는 ‘기반기술’로 나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망해가던 애플社 살려낸 것도 CT▼

CT는 우리나라에서 창안한 개념이지만 미국은 ‘연예산업(Entertain-ment industry)’, 영국은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 등의 용어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CT 성공 사례로는 애플사의 아이팟(ipod)과 연계된 음악사이트 아이튠즈가 꼽힌다. 애플은 디지털 음원을 암호화해 허가받은 사용자만 들을 수 있는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이 기술 때문에 아이튠즈를 통해 내려받은 음악은 아이팟에서만 재생된다. 2003년 시작된 아이튠즈 서비스는 지금까지 6억 곡이 넘는 노래를 팔아 망해 가던 애플을 살렸다. 애플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해 10월 비디오 아이팟을 출시해 동영상 분야에도 손대고 있다.

CT 개발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은 국가와 대학, 민간이 공조한다.

유럽연합(EU)은 지역 영화산업 육성을 위해 2001년부터 총 4억 유로(약 4800억 원)를 지원하는 ‘미디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번째(8.2%)인 영국은 2000년 창작산업추진반 등 전담기구를 설립하는 등 일찍 CT에 눈을 떴다.

프랑스는 국립영화센터(CNC)를 통해 영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게임으로 지원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영국 등 유럽의 문화콘텐츠산업을 둘러보고 온 설기환 문화콘텐츠진흥원 기술인력본부장은 “영국의 경우 브리스틀대의 3C리서치와 같이 대학 콘텐츠업체와 기술업체가 함께 참여해 실제 산업에서 당장 응용할 수 있는 CT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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