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들이 쌓고 그들이 무너뜨린…‘문명의 붕괴’

입력 2005-11-05 03:07수정 2009-10-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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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 유적
◇문명의 붕괴/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강주헌 옮김/788쪽·2만8900원·김영사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유인도(有人島), 이스트 섬.

남태평양의 외딴섬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석상과 돌계단의 흔적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가장 큰 석상의 높이는 21.3m, 무게 270t. 아직도 유럽인들은 미개한 폴리네시아인들이 이 석상을 세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이스터 섬은 삼림 파괴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 준다. 900년경 인간이 등장한 직후부터 삼림이 파괴되기 시작해 탐험가 로게벤이 처음 이곳에 상륙한 1722년에 완전히 끝이 났다. 그는 사람 키를 넘는 나무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삼림이 사라지면서 야생에서 얻던 식량 자원도 사라졌다. 나무와 새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바다로 나가는 카누조차 만들 수 없었다. 새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 여파는 참혹했다. 굶주림 때문에 싸움이 빈발했고 인구는 격감했다. 1774년 ‘쿡 선장’이 이곳에 닿았을 때 해안에는 빈 집터만 남아 있었다.

야생동물이 사라지자 섬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식량 자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의 유골이 무덤에서만 발견된 것은 아니다. 나중에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발견된다. 골수를 빨아먹었던 것일까? 쪼개진 뼈까지 있다.

이스터 섬의 구전 설화에서 가장 심한 욕은 “네 엄마의 살을 내가 씹어 먹겠다!”였다.

흔적만 남기고 아스라이 사라진 문명의 기억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게 있을까. 언젠가 우리도 이런 운명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미래의 관광객들은 뼈대만 남은 뉴욕의 마천루를 지켜보는 것은 아닐까.

진화생물학과 생물지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는 문명 붕괴의 생태적 맥락을 분석하며, 문명을 삼킨 재앙의 기본적인 패턴을 5가지로 정리한다.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이지만 불안정한 교역 상대, 그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의 대응.

이스터 섬의 몰락은 순전히 생태적인 붕괴였다. 자원의 지나친 개발로 스스로 쓰러졌다. 이 외딴섬에는 적대적인 이웃도, 어떠한 기후 변화도 없었다.

마야 문명의 붕괴도 이 섬의 전철을 밟았다. 인구 과잉과 이로 인한 환경파괴가 1차적이었다. 마야는 오늘날 르완다와 아이티가 안고 있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지나치게 많은 농부가, 지나치게 넓은 땅에, 지나치게 많은 곡물을 재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구와 자원의 불일치는 산림 파괴, 토양의 침식과 유실로 이어졌고 식량 부족은 전쟁을 불렀다. “마야와 이스터 섬의 붕괴는 더는 낭만적인 미스터리가 아니다.”

저자는 먼 옛날 원주민들이 환경을 존중하고 생태적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는 ‘에덴의 향수에 젖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민족이 쳐들어오기 전에 그들은 이미 몰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일부 사회만 붕괴했는가?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는 노르웨이인들과 원주민이 나란히 거주했는데도 원주민 사회만이 살아남았다. 왜?

바이킹의 후예들은 유럽의 생활 방식을 고집했고, 동토에서의 생존에 필요한 삶의 지혜를 끝까지 거부하다 결국은 굶어 죽었다. “아무리 엄혹한 환경이라도 붕괴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현대세계에도 재앙은 계속되고 있다. 소말리아와 르완다에선 붕괴의 조짐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르완다는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예견한 재앙을 눈앞에 그대로 펼쳐 보여 준다.

제1세계를 향해 질주하는 제3세계 거인 중국의 환경 문제와 경제는 지구촌의 ‘뇌관’이다.

미국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던 몬태나 주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으나 환경 문제에 짓눌리면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과거와 현대의 문명사회를 돌아보는 긴 여정을 마치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스터 섬에서 마지막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되돌아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는 위험을 그들은 왜 보지 못했을까?

원제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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