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프랑스 론-알자스 와인

  • 입력 2005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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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은 와인 없는 음식은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하저장고 캬브, 포도 수확, 와이너리에서 시음하는 모습. 사진 제공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프랑스인들은 와인 없는 음식은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하저장고 캬브, 포도 수확, 와이너리에서 시음하는 모습. 사진 제공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와인 없는 인생? 조금 더 오래 살지 모르지만 그 시간은 너무 길 것이다.”

와인과 떨어질 수 없는 프랑스인의 삶에 관한 유머다.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재배는 기원전 2500년 이집트 벽화에서 발견된다.

프랑스의 포도 재배는 1세기경 지중해 인근 론 계곡에서 시작돼 부르고뉴와 보졸레를 거쳐 동북부 알자스 지방으로 확산된다.

특히 론은 레드, 알자스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두 지역의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 20여 곳을 다녀왔다.》

○ 론의 레드 와인

론 지방은 보르도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이곳의 와인 산지는 론 강을 중심으로 한때 교황청이 있었던 고도(古都)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220km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돼 있다.

론의 레드 와인은 그르나슈, 시라, 생소 등 여러 품종의 블렌딩(조합)으로 유명하며 가벼운 과일향에서 가죽 냄새를 연상시키는 짙은 향까지 다양하다.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레드 와인의 양대 명문 보르도와 부르고뉴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프랑스 정부는 고급 와인의 전통과 지역별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원산지 통제 명칭제(AOC)’를 실시하고 있다. 포도를 재배하는 토양과 경작지 위치는 물론 품종과 재배 방법, 양조와 숙성 등 100여 조항에 이르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

‘샤토 보쉔’ 대표이자 론지방 포도주연합회장인 미셸 베르나르 씨는 이 지역에서 8대째 와이너리를 경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년에 38만 병을 생산해 80%를 수출한다. 샤토와 도멘은 포도밭은 물론 양조, 숙성 시설을 갖춘 곳을 의미한다. 샤토의 중심에는 12세기에 건축된 저택이 있고 마당 한 구석에는 1930년대식 시트로앵이 투박한 멋을 뽐내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차다. 딸도 가업을 잇고 있다.

“당신의 혈관에는 피 대신 와인이 흐르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가슴에 심장 대신 양조장이 들어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또 “프랑스 와인에서는 ‘테루아르(Terroir·토양)’가 가장 중요하다”며 “테루아르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포도를 가꾸는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아비뇽에서 자동차를 30여 분 타고 가다 보면 평지에서 갑자기 우뚝 솟은 것처럼 보이는 세귀레 마을이 나타난다. 12세기경 암벽을 중심으로 건축된 세귀레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바로 그 아래 ‘도멘 드 카바스’가 있다.

뜻밖에도 이곳의 주인은 1990년대 초반 스위스에서 이주해 온 알프레드와 아들 니콜라 에니 씨 부자다. 농학자 출신인 알프레드 씨는 “고향을 떠났지만 와인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4월 처음으로 부자의 이름을 나란히 적은 와인을 출시했다. 균형 잡힌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아비뇽 동쪽으로 자동차로 30분가량 가면 ‘샤토 드 몽포콩’이 나온다. 이곳의 주인 로돌프 드 팽 씨는 귀족의 후손이다. 그가 안내한 포도밭 고랑 사이에는 유채 계통의 노란 꽃이 피어 있다. 이 꽃들은 포도나무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포도나무는 다른 식물과 경쟁하면서 수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100m까지 뿌리를 뻗는다. 레드 와인의 풍만하고 요염한 빛깔과 달리 포도나무의 삶은 가혹한 셈이다.

드 팽 씨는 11세기에 세워진 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 성의 망루는 높이가 30m에 이르며 론 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몽포콩의 와인에는 그의 할머니 이름을 딴 ‘마들렌 백작부인’이라는 와인이 있다.

이처럼 샤토의 주인들에게 와인은 삶 자체이자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붙인 와인이 많다.

○ 알자스의 화이트 와인

아비뇽에서 3박 4일 일정을 마치고 테제베를 6시간 타고 알자스로 이동했다. 숙소가 있는 케이제베르그는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던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태어난 곳. 박사의 생가는 문화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라인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알자스는 170km에 이르는 ‘포도주 가도(街道)’가 장관을 이룬다.

알자스에서는 론 지역과 달리 레드 와인을 구경하기 힘들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기온이 낮아 화이트 와인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이 지역은 17세기 이후 프랑스와 독일로 땅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런 비운의 역사는 와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알자스 포도주 연합회(CIVA)의 교육 담당인 티에리 프리츠 씨는 “알자스 포도밭은 한때 독일 포도를 위한 시험장이 됐다”며 “충돌이 많았던 두 나라의 미묘한 역사만큼 와인의 세계도 ‘와인 전쟁’으로 부를 만큼 갈등의 골이 깊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은 가볍고 경쾌한 느낌에서 아로마가 강렬한 것까지 다양하다. 블렌딩이 많은 다른 지역들과 달리 리슬링, 실바네르, 피노 블랑, 게부르츠트라미네르 등 각 품종 고유의 맛을 살리는 게 특징.

이곳에 있는 회사들은 리크비르의 ‘위겔사’, 리보빌의 ‘트림바크’, 시골샤임의 ‘피에르 스파’, 파펜하임의 ‘카브 파펜하임’ 등. 이들 업체는 “와인 인구가 빠르게 느는 한국 시장에 주목한다”며 “화이트 와인은 생선 돼지고기 조개류와 어울리는데 아시아 음식에 맞는 와인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피에르 스파’의 와인 에이전트 드니 망쟁 씨는 가까운 포도밭으로 안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미국의 성조기가 날리는 언덕으로 안내했다. 독일과 미국의 치열한 접전으로 주인이 15차례나 바뀐 곳이다.

킨츠하임의 ‘도멘 와인바크 팔레’는 드물게 콜레트 팔레 여사와 두 딸 카트린, 로랑스 등 여성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알자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팔레 여사는 거위간으로 만든 푸아그라와 와인을 손수 내놓으며 “와인은 우리의 기쁨이자 자존심”이라고 강조했다.

알자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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