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사종]‘이야기’ 발굴해야 韓流가 산다

  • 입력 2005년 3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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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의 ‘겨울연가’ 방영 여파로 ‘용사마’ 열풍이 불고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류 열풍이 뜨거워질 때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한류를 지속시킬 것인가’였다.

그러나 문화계와 정부 지방자치단체까지 합세한 다양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최근 KOTRA 일본 나고야 무역관은 ‘한류 열풍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영화 수입액과 드라마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나의 일관된 생각은 한류 열풍이야말로 유행의 일시적 반복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홍콩 영화가 아시아대륙을 열광케 했지만 식상한 내용과 빈곤한 콘텐츠에 부닥쳐 사라졌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대중문화에 전적으로 의존한 한류 열풍은 주기적 한계와 만날 수밖에 없다. 한류 붐을 지속시키기 위해 정작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우리 민족의 ‘이야기 자원’을 캐고 다듬어 나가는 일이다.

나의 관점이 맞는다면 세계는 이미 ‘이야기 자원 전쟁시대’에 돌입했다. 이제 정보사회의 태양은 지고 생산의 핵심 동력이 이야기로 옮겨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세계가 이야기를 사고 이야기에 열광한다. 많은 시간과 인력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보다 이야기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음은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한 편이 입증해 준다. 삼성전자의 수출이익이 연간 3조 6000억원 이라면 마법사 이야기라는 콘텐츠 하나만으로 해리포터는 연간 2조 원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 낸다. 판타지 소설로 잘 알려진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까지 합하면 그 부가가치의 총량은 가히 천문학적이고 우리의 정보기술(IT) 산업 규모를 가볍게 상회한다. 한 개인의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국민의 자산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야기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들의 사례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뿌리를 따라가면 그 민족의 무궁한 서사적 자원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초에 생성된 이야기는 설화나 신화로 이어지고 그 자양 위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자란 작가들에 의해 ‘고전’으로 완성된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서사적 자원에서 캐낸 ‘아서왕의 죽음’ ‘캔터베리 이야기’가 수많은 고전의 다리를 건너며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첨단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것이다.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누구도 넘보지 못할 입지를 다진 할리우드산업의 성장도 서구의 역사적 뿌리에서 배태된 이야기 자원의 지속적인 공급이 있어 가능했다.

따라서 인프라가 되어 줄 이야기 자원의 개발 및 공급 없이 수출되는 한국 드라마가 주는 환상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외면받을 숙명을 안고 있다.

다행히 자원 빈국인 한국은 단군신화, 삼국유사, 고구려, 중근대사,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될 서사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문제는 ‘이런 자원이 재능 있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만나 어떻게 탄탄한 이야기 토대로 탄생하는가’이다.

스타 몇 명에 일희일비하는 한류 정책보다 이야기 작가를 발굴하고 문학 연극 등 기초예술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막 불붙기 시작한 ‘이야기 전쟁 시대’를 대비하자.

홍사종 경기도 ‘문화의 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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