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내 詩, 묵은 맛 나면서 끝맛이 약간 쓰대요”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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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스스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요즘은 시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도서출판 작가가 시인 문학평론가 등 문인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 오늘의 시’ 설문조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가장 좋은 시인’으로 꼽힌 문태준(35·불교방송 PD) 씨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좋은 시’(가재미)와 ‘가장 좋은 시집’(맨발) 등 세 부문에서 문인들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시인은 마음 안과 밖이 트인 사람이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내력을 보게 되고 안쓰러운 감정이 생깁니다.”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된 ‘가재미’는 지난해 현대시학 9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낀 처연한 연민을 그렸다. 이 시에서 그는 임종을 앞둔 ‘그녀’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을 그렸다. ‘그녀’에 대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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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다음으로 좋아했던, 살붙이나 다름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큰어머니라고 밝혔다.

“이 시를 쓰고 난 뒤 탈진할 정도였어요. 한 번에 써내려갔지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 오랫동안 망설여지고 힘들었습니다.”

한쪽 눈이 다른 쪽으로 옮겨 붙어 한쪽 밖에 볼 수 없는 가자미처럼 “그녀는 죽음만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아야만 하는” 고통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시집’으로 꼽힌 ‘맨발’(창비)은 지난해 조사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같은 제목의 시를 표 제작으로 삼아 묶은 것이다.

문인들이 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문씨는 “독자들과 달리 직접 시를 쓰는 분들이 내 시를 보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는 “서른다섯 살의 젊은 시인의 작품에서 묵은 맛이 나면서 끝 맛은 약간 쓴 맛이 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성복 시인은 그를 두고 “어찌 보면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다”고 평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문 씨에게 시 청탁이 부쩍 늘었다.

“그럴수록 스스로 단속해야죠. 시에 대해 더욱 철저해야 하고 막 써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죠.”

한편 ‘2005 오늘의 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좋은 시인으로 문 씨에 이어 문인수, 박형준, 김명인, 천양희 시인이 꼽혔다. 개별 작품으론 ‘가재미’에 이어 문인수의 ‘꼭지’와 박형준의 ‘춤’이 뒤를 이었다. 시집은 ‘맨발’에 이어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 유홍준의 ‘상가에 모인 구두들’, 박시교의 ‘독작’, 이재무의 ‘푸른 고집’ 순이었다. 개별 작품들은 단행본 ‘200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로 출간됐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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