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입력 2005년 1월 21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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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총 5권)/더글러스 애덤스 지음·김선형 권진아 옮김/각권 300여 쪽·각권 8000∼8500원·책세상

뛰어난 연주자의 음악은 일부만 듣고 있어도 금방 호감이 간다. 이 책도 그랬다. 전 세계적으로 무려 1500만 부가 팔려 나갔다는 현대 SF의 고전 걸작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초반부터 이 책의 흡인력은 컸다.

흔히 SF는 무겁고 엄숙하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과학이론은 놀랄 만큼 익살스럽고 쾌활하다. 과학, 철학, 수학, 생명공학, 문화인류학, 천문학, 미래학 등 ‘사이언티스트’나 ‘과학동아’ 같은 과학 잡지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주제들에 대고 질펀한 농담을 던지고, 장난을 친다. 이 책으로부터 코믹 SF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무심히 책을 펼쳤다가 그 맛에 광활한 우주로의 여행을 떠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히치하이커들의 우주여행이므로 물론 스릴도 있다. 지구가 종말을 맞는 순간 주인공의 한 사람인 ‘아서 덴트’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포드 프리텍트라는 히치하이커에 의해 우연히(별로 극적이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되게 웃기게) 구조된다. 포드와 아서는 방금 전 지구를 멸망시킨 보고인(외계 행성의 생명체)의 우주선에 있다가 발각되어 추방을 당한다. 우주에 내던져진 그들은, 죽음 직전에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격인 우주 대통령 자포드 비블브락스와 또 한 명의 지구인인 트릴리안에게 구조된다. 그들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우주선 ‘순수한 마음’호에 히치하이킹을 한 셈이다.

이 책은 이들 넷이 겪는 파란만장한 우주 여정을 5권(1.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3.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4.안녕,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5. 대체로 무해함)으로 그려내고 있다.

스토리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교양과학을 논리적으로 눙치고 비튼 것을 알아보는 즐거움도 크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비튼다. “…그 밴드의 수석 연구 회계사는 ‘재앙 지대’의 세금 공제에 관한 그의 일반 이론과 특수 이론을 지정 받아 최근 맥시 매갈론 대학의 신(新)수학과 교수로 초빙되었다. 이 이론에서 그는 시공간 연속체의 구조는 그저 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완전히 접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2권 146쪽)

과학 잡지와 교양 과학 단행본을 꾸준히 읽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몇 가지 옥에 티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느낄 것이다. 컴퓨터(저자는 컴퓨터 전도사였다고 한다)와, 우주선 속의 로봇, 음료 자판기, 말하는 문 등을 코믹하게 묘사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명성과 신화가 훼손될 리 없다. 언제 읽어도 뛰어난 재즈 음악처럼 좋다.

박병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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