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분노’를 맡겨 보세요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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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때문에 일을 망쳤던 적은 없나요. 분노의 해독제는 인내심입니다. 그러나 매사에 인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분노가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한 검객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줍니다.

무술의 대가인 검객이, 스승으로 모시는 선사의 염주가 마음에 들어 그걸 줄 수 없겠느냐고 간청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선사는 자신 역시 탐나는 게 있으니 그것과 바꾸자고 대답하지요.

“선사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건 네 성질이다. 화 잘 내는 그 성질을 내게 다오.”

뜻밖의 말에 난감해 하는 검객을 향해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그걸 줄 수 없다면 일단 받은 걸로 하고, 한동안 네게 맡겨 두겠다. 그러나 오늘부터 그것은 내 것이니 내 허락 없이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라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얻은 염주를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검객은 어느 날, 술에 취해 시비를 걸어온 한 사내와 마주치는 순간 분노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염주에 손이 닿는 순간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싸움을 피했지요.

‘화 잘 내는 성질은 이제 내 것이 아니고 선사의 것이기 때문에, 그분 허락 없인 사용할 수 없다.’

화가 날 때마다 검객은 스스로를 향해 그렇게 속삭였습니다.

화가 치솟는 순간 평정심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아주 잠시만 멈추고, 속으로 ‘분노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명령해 보십시오. 그러면 불처럼 일어나던 분노의 불길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분노는 아름다운 사람조차 흉하고 무섭게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호흡을 내쉬며 ‘분노하겠다’라고 명령하는 순간, 분노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때 알아차린다는 말은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의지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요.

알아차리는 것이 힘들다면 누군가에게 화 잘 내는 그 성격을 맡겨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혹시 제게 분노를 맡기고 싶어 하는 분이 있다면 저 또한 기꺼이 제가 갖고 있는 염주를 내드리겠습니다.

불교방송 ‘마음으로 듣는 음악’ 진행 정목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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