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홍승엽 ‘싸이프리카’… 지친 영혼 춤판으로 오라

  • 입력 2004년 6월 7일 17시 27분


홍승엽 감독의 신작 ‘싸이프리카’를 연습중인 ‘댄스씨어터 온’의 연습실은 화기애애한 가운데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김동주기자
홍승엽 감독의 신작 ‘싸이프리카’를 연습중인 ‘댄스씨어터 온’의 연습실은 화기애애한 가운데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김동주기자
“자, 세 사람 위치 잡고 준비∼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4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필동의 ‘댄스 씨어터 온’ 연습실. 한국 현대무용계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홍승엽 예술감독(42)의 신작 ‘싸이프리카’의 연습이 막 시작되고 있다. 10여 명의 무용수들 사이로 한 남자무용수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더니, 이어 무용수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경쾌하게 리듬을 탄다. 얼룩말, 기린, 침팬지, 공작새, 하마, 심지어 악어까지 연상시켰지만 딱히 어느 동물을 흉내 낸다고도 할 수 없는 기묘한 몸짓들이다.

“‘싸이프리카’ 전 공연을 공개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네요.”

‘싸이프리카’는 홍 감독이 ‘댄스 씨어터 온’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새로 만든 작품으로 사이버(Cyber)와 아프리카(Africa)의 합성어다. “이 작품이 꼭 아프리카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에요. 그냥 편히 쉴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가상공간을 그려내려는 것이지요.”

홍 감독은 경희대 섬유공학과 졸업 후 뒤늦게 무용을 전공해 2년 뒤인 198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어 96년 서울국제무용제 안무가상, 99년 일본 사이타마 국제콩쿠르 특별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국내 정상급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로 떠올랐다. 현대인들의 문제의식을 뛰어난 유머감각과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세련되게 풀어내는 그의 안무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무용수에게 동작을 지시하는 그의 손에는 작품구상을 새까맣게 적은 노트가 들려 있다. 무용수들은 비 오듯 땀 흘리며 동작을 몸에 익히고 있다.

‘댄스 씨어터 온’의 모자이크 중 ‘데자뷔’

“작품 구상은 작년 7월부터 했지만 본격 작업은 2월 워크숍으로 시작됐죠. 워크숍을 하면서 작품의 동작을 하나하나 만들어갔어요. 하루 종일 워크숍을 해도 실제 공연에 쓸 1분 정도의 동작만 잡아내면 성공이었죠.”

입단 6년차 무용수인 송보경씨는 “선생님은 전체만 컨트롤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은 각자 체크하며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홍 감독에 대해 “봐 주는 법이 없는 엄격한 분”이라고 평한다. 신입단원인 전유영씨도 “못 따라 가면 조용히 배역에서 빼버리지요”라며 맞장구친다.

오후 6시 연습이 끝났다. 무용수들은 땀을 닦으며 분주하게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공연이 2주밖에 안 남았는데 벌써 끝내도 되느냐고 묻자, 홍 감독은 “저녁이면 다들 먹고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며 무용계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놨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단의 현실이다. 하지만 춤이 좋아 춤에 인생을 걸었기에 단원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17, 18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선 ‘싸이프리카’ 외에, ‘빨간 부처’ ‘말들의 눈에는 피가’ ‘달 보는 개’ 등 ‘댄스 씨어터 온’의 대표작 여섯 작품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재구성한 ‘모자이크’도 무대에 함께 오른다. 2만∼3만원. 02-2005-0114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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