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佛공저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

  • 입력 2004년 4월 6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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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현실참여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덕적 열정으로 무장한채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실존적 화두로 밀고간 사르트르,냉정한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방관자적 참여를 견지한 아롱의 태도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역사는 다시 묻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50년 6·25전쟁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현실참여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덕적 열정으로 무장한채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실존적 화두로 밀고간 사르트르,냉정한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방관자적 참여를 견지한 아롱의 태도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역사는 다시 묻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식인의 현실참여 모델로 받아들여지는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그와 가장 가까운 이념적 동지였던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 그들과 함께 ‘앙가주망’(참여)을 표방하며 1945년 10월에 창간된 ‘현대’지에 동인으로 참여했던 레이몽 아롱(1905∼1983).

한때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모토로 한 배를 탔던 이들이 갈라선 배경에는 1950년 6월25일 프랑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발발한 전쟁이 놓여 있었다.

6·25전쟁이 프랑스 지식인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하면서 요즘 현실참여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 지식인사회에 냉정한 성찰을 요구하는 책이 출간됐다. 정명환 가톨릭대 대우교수와 장 프랑수아 시리넬리 파리국립정치대 교수 등의 공저로 출간된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민음사). 프랑스 지식인 사이의 이념논쟁 과정에서 6·25전쟁이 간헐적으로 언급되기는 했지만 이를 본격 조명하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들은 한국의 해방공간에서 극심한 좌우대립이 벌어졌듯이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지식인사회도 친공(親共)과 반공(反共)의 선택을 놓고 극심한 분열상을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그 와중에서 사르트르가 자신의 자리를 ‘메를로퐁티의 오른쪽, 카뮈의 왼쪽’이라고 술회할 만큼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보다 더 좌익에 기울어 있었다.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의 고등사범학교 후배로 두 사람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함께 대독(對獨) 투쟁을 벌이며 가까워졌고 ‘현대’지를 창간할 때 공동편집자로 나서며 정신적 동지가 된다. 그러나 6·25전쟁은 둘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사르트르는 처음에는 한국전쟁이 ‘남한에 의한 북침’이라는 프랑스공산당의 의견을 따랐고 나중에는 “북한이 남한과 미국의 계략에 빠져 남한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북한을 사주해 남한을 침공한 스탈린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반공주의자로 전향한다. 1953년 사르트르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현대’지에 게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둘은 결별한다.

사르트르와 고등사범학교 동기이자 군복무를 함께 했던 레이몽 아롱은 서로가 서로를 지적으로 단련시키는 ‘특권적인 대화상대자’로 여길 만큼 절친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한 입장 차로 1947년 아롱은 사르트르와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아롱은 6·25가 발발하자 “북한의 군대가 남한을 침략한 것은 2차대전 이후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이 전쟁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계획 아래 이뤄진 남침임을 거듭 강조했다. 아롱과 사르트르의 결별은 6·25 전에 이뤄졌지만 6·25를 기점으로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와 구소련에 더 가까워지게 되고 아롱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쪽으로 더욱 경사된다.

이 책은 억압당한 계급과의 협력을 통해 계급 없는 사회의 도래에 지식인이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참여를 ‘혁명적 유토피아’로, 정치적 현실과 도덕적 요청을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평생 참여하는 방관자로 일관한 아롱의 참여를 ‘비판적 현실주의자’로 각각 규정하고 있다.

대표집필을 맡은 정명환 교수는 “사르트르의 현실참여가 도덕적 동기에 의해 촉발된 뜨거운 열정의 산물이었다면 아롱은 현실과 냉정한 거리를 둔 ‘방관자적 참여’를 고수했다”면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사르트르의 환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반추하고, 아롱의 공산체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되새겨 타산지석의 지혜를 얻기 바란다”고 밝혔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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