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 마침내 이룬 '침팬지 연구' 의 꿈

  • 입력 2003년 3월 4일 18시 50분


코멘트
《일반인들에게 자연 생태계의 중요성과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애써 온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동물행동학·49)가 그의 오랜 꿈인 ‘영장류연구소’를 세운다. 5월 중순 창립돼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들의 삶의 터전이 될 이 연구소를 위해 세계적인 영장류전문가인 제인 구달 박사와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의 마츠자와 데츠로(松澤哲郞) 교수가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이들은 창립식에도 직접 참석할 예정이다.》

'저들은 도대체 우리를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최 교수는 당시 동물원이 있던 창경원에서 인간과 너무도 비슷하게 생긴 침팬지들을 바라보며 숱한 시간을 보냈다.

“침팬지가 저를 바라보는 눈을 보면서 그들이 뭔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침팬지 연구와 생태계 학습을 위한 최재천교수의 ’영장류연구소’가 5월 중순에 문을 연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는 서울대 생물학과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물행동학을 전공했지만 영장류 연구는 일단 뒤로 미뤄야 했다. 현실적으로 영장류 연구는 너무 어려운 점이 많아서 이 분야 연구자로 인정받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성 곤충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분야로 택했지만 언젠가 학계에서 자리를 잡으면 본격적으로 영장류 연구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영장류 연구는 자연과학분야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 돼 가고 있었다. 선진국들이 DNA연구의 다음 단계로 평가하면서 한창 관심을 기울이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인지과학, 신경과학, 뇌과학 분야 연구에서 영장류 연구는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문제 때문에 인간을 상대로 연구하기 어려운 이 분야의 연구가 영장류 연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최 교수는 “영장류 연구소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선진국의 연구수준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최 교수의 꿈이 실현 가능성을 보이며 서서히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제인 구달 박사가 처음 내한했을 때였다. 구달 박사는 1960년부터 아프리카에서 야생 침팬지들과 생활을 같이하며 그들의 행태를 연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세계적인 영장류 연구 전문가인 제인 구달 박사(왼쪽)와 마츠자와 데츠로 교수도 최재천 교수의 영장류연구소 설립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그 때 구달 박사는 한국 동물원에서 침팬지가 ‘사육’되고 있는 열악한 상황을 보고 너무도 안타까워하면서 저에게 그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영장류들이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면 전 세계에서 영장류들을 모아다가 주겠으니 한국의 동물원에 있는 그 영장류들도 새로운 좋은 환경에 데려다 살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번 창립식에 구달 박사가 참석하는 것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5월10∼14일 내한하는 그는 한국인들에게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기 위해 대중강연과 방송출연 등 바쁜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대 총학생회(회장 박경렬)도 그의 강연을 ‘대동제’ 행사로 지원하기로 했다.

최 교수는 영장류 연구에 앞서 있는 일본의 영장류연구소들을 돌아보며 연구소 설립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웠고 일본 학자들도 영장류 동물들의 제공과 기술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영장류 연구소는 일반인들이 생태계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를 생태계 학습의 장으로 이용하려는 지자체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최 교수는 강조한다. 최 교수는 일반인들이 동물들을 직접 관찰하도록 해 이를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며 일반인들에게 자연을 알리는 데 힘써온 최 교수가 이제는 자연 연구에 일반인들을 직접 참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철학박사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