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학인 19명 '아내의 고향'출간

  • 입력 2003년 1월 8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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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리브가
/사진제공 리브가
아주 오래 전 단발머리 찰랑이던 아내의 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나올 것 같은 곳. 눈밝게 보면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풍경에서 열아홉명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는 ‘아내의 고향’을 떠올린다.

문인들이 사진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그리움을, 사랑을 읽어낸 책 ‘아내의 고향’(리브가)이 출간됐다. 전남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바닷가 마을의 면면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작가 이상윤씨의 흑백사진과 소설가 구효서 심상대 이순원 하창수, 시인 고진하 안도현 이문재 이재무 장석남 최영철, 평론가 이경호 등이 쓴 길지 않은 글을 함께 묶었다.

돌담 곁에 피어난 야생의 푸른 잎사귀들에서, 이경호는 생각에 잠긴다.

‘체념을 모르는 누군가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그 자리에 사랑의 밑거름을 주리라고는, 그리하여 마치 진흙수렁에서 가시연꽃이 피어나듯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자리가 바로 아내의 고향에 마련되리라고는 도무지 예감조차 해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낮은 담장 곁에 심은 맨드라미와 모래 해변에 뒹구는 작은 돌, 따뜻한 볕 아래 펼쳐 놓은 무말랭이에서 이들이 발견하는, 일상 속에 숨죽인 그리움과 사랑이 농밀하다.

‘차고 딱딱하고 모나고 녹스는 것뿐인 나날의 내 생의 불모지에 아내는 오늘도 희고 둥근 백합화다. 척박한 골짜기에 핀 백합화는 더 아름답다’고 시인 고재종은 털어놓는다.아내에 대한 묵상에서 스며 나오는, 지나온 세월과 현재의 삶에 기댄 옛 추억이 고향의 자연과 맞닿으며 생각의 줄기를 길게 뻗어간다. ‘눈을 감은 채로 서 있어야 하는 길, 허공의 외나무다리, 동력이 끊어진 배는 우리에게 삶에서 그 끝을 경험하게 한다. 행운이다. 그때 우리는, 모든 물길이 흘러드는 바다가 된다.’(하창수)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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