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동물 이용한 재활치료

  • 입력 2002년 12월 5일 16시 11분


말 위에서 공을 집어넣기 위해 애쓰는 뇌성마비 어린이.신석교기자
말 위에서 공을 집어넣기 위해 애쓰는 뇌성마비 어린이.신석교기자
동물을 매개체로 삼아 장애인을 치료하는 기법이 한국에서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자폐아동이 개를 통해 사물을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거나 뇌성마비 아동이 말을 타면서 균형감각을 찾는 등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사들이 무료로 운영하는 ‘장애인 재활승마단’과 ‘치료견 센터’를 찾았다.

●재활승마의 세계

지난달 28일 오후 2시30분 경기 군포시 부곡동에 자리잡은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 골프장비 대신 아이를 업은 어머니들이 속속 도착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아는 체도 하면서 이들은 필드 대신 말 사육실쪽으로 향했다.

‘명품’ ‘파워드럼’ 등 훤칠한 용모를 자랑하는 경주마 우리를 지나면 말 실내 훈련장이 나온다. 조그만 덩치의 호주산 ‘드림’과 미국산 백마 ‘피날리’가 훈련장을 두어 바퀴 돌며 몸을 푸는 동안 대기실에서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긴장을 풀고 있다.

덩치는 세 살쯤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섯 살인 성윤이는 다른 말(言)은 잘 못해도 말(馬)에 대한 의사표현은 뚜렷하다. “성윤아, 말 타는 거 좋아?” “응.”

선천성 뇌성마비인 성윤이는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이 다닌 곳이 병원이다. 아이의 다리는 경직됐다기보다는 힘이 없어 안쪽으로 자꾸 말려든다.

말의 준비운동이 끝나자 훈련관과 자원 봉사자들이 성윤이를 부축해 말쪽으로 간다. 말에 아이를 태운 뒤 말 앞에 한 명, 양 옆에 한 명씩 모두 세 명이 성윤이를 보조한다. 자원봉사자들은 한 손으로는 성윤이의 허리를 받쳐서 곧추세우게 하고, 다른 손으로는 다리가 말의 몸에 밀착되게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질 듯 흔들흔들하던 성윤이는 곧 허리로 균형을 잡는다. 한 바퀴를 돌고 나자 대기실쪽으로 고개를 돌린 성윤이가 갑자기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 30분 동안 ‘말타기 치료’가 진행된다.

“승마를 시작하고부터 부쩍 호기심이 많아졌어요. 좀 부산스러워졌다고나 할까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험이 무서움을 없애고 자신감을 생기게 한 것 같아요. 말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정서적으로도 안정되는 것 같아요.” 성윤이 어머니(33)의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 목, 토요일 심신장애인을 위한 재활승마가 열린다. 삼성전자가 주관하는 재활승마 과정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뇌성마비 아동들이 참가한다.

올 3월부터 말 세 마리와 함께 시작한 재활승마 과정에는 지금까지 7명의 어린이가 참가했다. 말의 움직임은 사람이 걸을 때와 가장 비슷해 말을 타고 있으면 마치 사람이 걸을 때처럼 근육과 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물리치료사 출신 김연준 주임의 설명이다.

“물리치료실에서 하는 운동이 정적이라면 승마치료는 동적입니다. 말 위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기 위해 감각을 발휘하다 보면 땀이 날 정도로 많이 운동하게 되죠. 지구력이 키워지고 스스로 앉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치료 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기도 합니다.”

물론 효과는 단순히 재활승마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이 과정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꾸준히 병원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있다. 힘겨운 물리치료를 피하려고만 하던 아이들이 승마치료를 통해 ‘움직이는 맛’을 알게 되면 적극적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려 한다는 것이 참가 부모들의 설명이다.

8개월째 재활승마에 참석하고 있는 규석이(10)는 치료효과가 가장 높은 아이로 꼽힌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잡고는 서지 못하던 아이가 6개월간 말을 탄 후 4초간 서 있게 됐다. 한 손으로 잡아주면 열 걸음 정도는 힘겹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됐다.

신체적 반응만이 아니다.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아이들의 경우 치료를 처음 받으러 올 때는 표정이 어둡고 사물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높았지만 과정이 끝난 뒤에는 생글거리며 말이나 사람을 스스럼없이 대하게 됐다.

“큰 동물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연습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성격이 밝아진다. 적극적이 되며 의사표현이 분명해진다”고 정광연 장애인 재활승마 과장은 말했다.

삼성은 현재 아동만을 대상으로 치료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도 덩치가 작은 제주도 조랑말 또는 아랍산, 호주산 포니 등이 선호된다.

말을 고를 때는 성격이 온순하고 걷는 동작 하나만 해도 다른 것보다 큰 것이 선호된다. 일단 치료마로 선발되면 조교가 걷는 훈련을 시킨다. 경주마와 달리 말의 본성에 위배되게 늘 걷거나 약간 뛰는 정도에 그쳐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견디는 훈련도 해야 한다.

재활승마는 외국에서는 일반화돼 있다. 뇌성마비 아동뿐만 아니라 사고로 신체 장애를 겪는 어른도 치료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다. 현재 재활승마에 투입된 말은 세 마리. 따라서 하고 싶다고 다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활승마치료를 받으려는 사람이 진행성 질병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통증이나 상처는 없는지 등도 치료 시작 전에 병원에서 판단해줘야 한다.

그래도 내년부터는 이 치료요법이 보다 활성화될 전망이다. 전국의 개인 승마장에서도 재활승마를 일부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 8월 열린 재활승마 설명회에 지방의 승마 교관과 코치 12명이 참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현재 삼성의 재활승마 과정은 무료이지만, 개인 승마장에서는 실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등에서는 1시간 수강료가 5000원, 일본에서는 3만원이다.

●함께 놀며 치료하는 개

치료견 후보는 다양하다. 잡종개에서부터 푸들, 치와와, 폭스테리어, 요크셔테리어, 골든 레트리버 등 사람을 잘 따르는 개면 다 괜찮다.

대신 성격 테스트를 통해 견성(犬性)이 훌륭해야 뽑힌다. 주인 말고도 다른 사람에 대해 공격적이지 않아야 하며(대인 관계), 다른 개를 공격하지 말아야 하며(대견 관계), ‘앉아’‘일어서’‘기다려’‘따라와’‘엎드려’ 등의 명령어에 기본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숨거나 위축되지 않고 성격이 밝아야 하며,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질병이 없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배변하는 훈련도 통과해야 한다.

삼성카드가 벌이는 치료견 사업에는 이런 테스트를 통과한 개 20여마리가 참가하고 있다. 이 개들은 현재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사육된다.

치료견은 95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3000여명의 질환자들을 접해왔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자폐아동, 보육원·양로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정신분열로 인해 범죄자가 된 사람들을 수용한 공주치료감호소 재소자들도 치료에 참가했다.

치료견이라고 해서 특별히 의사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마음이 닫혀있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개가 벗이 돼주는 것일 뿐이지만 치료효과를 높여준다.

중학생 시절 ‘왕따’를 당해 대인 기피증세가 심했던 한 남자 대학생(20)은 8년간 치료견을 키운 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했다. 4살 된 래브라도 레트리버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면서 사람이 오면 숨곤 하던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식으로 생활 패턴을 바꿨다. 치료견 센터에서 일과표를 짠 뒤 시간에 맞춰 개를 운동시키거나 목욕시키게 했기 때문이다. 치료견 사육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앉아” 같은 명령어를 익히도록 하는 ‘훈련과제’를 내주고 전 주의 과제를 체크했다.

늘 따돌림만 당하던 아이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개를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맛보았다. 훈련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면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서 한 번 만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연스레 왕따도 사라졌다.

치료견을 관리하는 에버랜드는 최근에는 개를 대여하기보다는 1주일에 한 시간씩 개와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보통 4개월 과정에 10번 정도 만남을 갖게 한다. 현재 삼성은 국립정신병원 소아병동, 보바스 노인병원 등과 정기적인 치료프로그램을 갖고 있으며 보육원과 양로원은 그때그때 선정한다.

최윤주 치료견 센터 팀장은 “동물치료의 세계는 광범위하다”며 “특별히 훈련된 개가 아니더라도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개를, 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새를 사 주면 정신장애는 호전되기가 쉽다”고 조언했다.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빗질하는 등 한 생명을 돌보면서 스스로 안정되고 사회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재활승마단 031-461-6637∼9 치료견 031-320-8920, 8930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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