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씨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8시 51분


40여년간 우직하게 농사짓고 나무를 키워온 전우익 할아버지는 '진짜 잘 사는 것은 어떤 거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직접 만든 작은 책상이나 박 전등갓에서 고집쟁이 농사꾼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느껴진다. - 봉화=박영대기자
40여년간 우직하게 농사짓고 나무를 키워온 전우익 할아버지는 '진짜 잘 사는 것은 어떤 거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직접 만든 작은 책상이나 박 전등갓에서 고집쟁이 농사꾼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느껴진다. - 봉화=박영대기자
몇년 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일갈로 제 살길 찾아 바쁜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혹은 죄스럽게) 했던 고집쟁이 농사꾼이 다시 찾아왔다.

올 초 펴낸 ‘사람이 뭔데’로 요즘 도시인들에게 ‘깊은 산 속의 약초’(시인 신경림) 같은 귀한 얘기를 또 들려주고 있는 전우익 할아버지(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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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말은 여전히 짧고 단순했다.

제 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에다 허름한 옷차림이며 헤헤거리는 웃음소리까지, 그 어디에도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권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가 누구든 그런 태도는 다를 게 없는 듯했다. 그를 만나 얘기하면서 아직 나이 마흔에 못 미치는 기자는 그 분위기에 빠져 너무 ‘버릇없어지지 않을까’ 자꾸 앉음새를 고치기도 하면서 자신을 수습해야 했을 정도다.

청량한 산바람이 불어오는 대청마루에서 할아버지가 가만가만히 들려주는 순박한 얘기들은 때로 깨치게 하기도 하고 때론 취하게 했다.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사는 것, ‘진짜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폭포수처럼 내리치는가 하면 40여년 여일했던 그의 단순한 삶이 풍기는 향취에 취하게 만들게도 했다.

● 별난 농사꾼의 사는 법

해방직후 좌익활동 경험
낙향후 40여년 농사지어

소백산 줄기를 굽이굽이 가로지르는 산자락 속에 자리잡은 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 마을. 한때는 대지주의 가옥답게 번듯했겠지만 지금은 나무와 잡초 더미 속에 초라하게 묻혀 있는 한 농가에서 전 할아버지는 5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산 속의 한기가 제법 쌀쌀해질 즈음 전 할아버지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혼자 사랑채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아직도 장작불을 때는 집이 있을까?

“우리 동네도 다들 보일러로 바꾸느라고 야단이었제”라고 허허 웃고 말지만 그의 우직한 고집이 단번에 느껴진다.

대지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중동학교를 나와 해방 직후 ‘이름과는 반대로’ 좌익활동을 하다 6년간의 감옥살이를 한뒤 낙향해 허리 굽어진 노인이 된 지금까지 그는 농사짓고 나무를 키우며 이곳을 지켜왔다. 그리고 틈틈이 농사일 얘기, 그 속에서 자연에 대한 순응과 일치를 배우는 자유인으로서의 생활을 글로 써서 지인들에게 보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 글이 책으로 묶였고 그의 단순한 삶에서 척박한 세상을 이겨내는 양식을 구한 적잖은 이들이 ‘열성팬’이 돼 있다.

집 옆 그가 배추와 콩을 키우는 텃밭으로 가는 길에 어디선가 진한 구린내가 풍겨온다. 거름으로 주려고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다 놓은 큰 통에서 나는 냄새다.

“호박을 키울 때도 똥거름 먹인 놈은 3년을 놔 둬도 썩지를 않아요.”

‘그렇게 좋은’ 똥거름이지만 이 산동네에서도 그걸 쓰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 제초제를 안 쓰는 것도 “제초제란 어디까지나 응급처방이지 근원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효용성이 크니 쓴다는 거지만 여태 똥거름이나 장작불을 고집하는 건 농촌에까지 불어닥친 어지러운 변화가 못마땅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 산천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초가집인데 그게 사라진 시골 풍경은 살풍경해요. 하루아침에 벼락치기로 세상을 뜯어고치니 메마르고 험악해져 간다고. 그래놓고 고작 한다는 말이 정서교육 하겠다고? 정서는 교육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고 분위기로 길러지는데 네모꼴 세모꼴 뾰족뾰족한 데서 무슨 놈의 정서가 길러질꼬?”

늘 이런 식이다. 농사를 짓는 일, 나무를 키우는 일, 하다 못해 장작을 패는 얘기로 시작해서는 자연의 작은 이치들을 깨닫게 해주고 결국은 사람이 잘 사는 게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몽당연필을 봐요. 10년 전에 쓰던 걸 꺼내 써도 멀쩡해요. 그런데 볼펜은 어떤가요. 하물며 컴퓨터는? 편하면 편한 만큼 그 대가를 치른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사람살이가 편리해지는 걸 꼭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사랑채 마루에는 자리를 만들려고 모아놓은 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부들은 볕에서 3∼4일 말린 다음에 응달에 말립니다. 볕과 어둠이 어우러져야 빛깔이 간직되는 것 아닌교. 풀을 뽑을 때도 인간이 제 마음대로 하면 중간에서 끊어져요. 사람 위주로 생각지 말라는 게 풀 한 포기 뽑는 데서도 나타나는 것이죠.”

그건 나무토막 자를 때도 매한가지다. 토막을 잡은 손과 톱을 잡은 손의 호흡이 딱 들어맞아야 바로 잘린다는 걸 그는 터득했다. 순리를 따르니 그 나이에도 그는 여느 젊은이보다 나무를 솜씨있게 자른다.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일

악착같이 살지말자 다짐
산중처사로 숨기는 싫어

“나무와 산은 1년 사철에 풍요와 가난을 고루 겪죠. 인간은 오직 한가지 풍요만을 좇다 이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인권(人權)에만 매달린 사람은 어쩐지 가짜 같아요. 천지만물에 두루 존엄함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대접하는 사람이 참사람 아닐까요.”

그는 목권(木權) 산권(山權) 강권(江權) 등이 인권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고 본다.

“그런데 ‘사람이 뭔데’ 삼라만상에 깃든 존엄성을 짓밟을 수 있느냐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사람이 사람 아닌 걸 귀하게 여길 때 비로소 자기 자신도 귀해지는 법입니다.”

그의 삶이나 말은 그가 요즘 열심히 읽고 있다는 도연명의 그것을 무척이나 닮은 것처럼 보인다. 젊어서는 노신의 책을 즐겨 들었던 그가 도연명에 빠진 건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악착같이 사는 걸 피하라’는 도연명의 ‘자제문(自祭文·자신의 제문)’ 속 한 대목은 그 자신이 살아온 이력이기도 하다.

그는 이 시대의 도연명으로, 산중 처사로 숨어살 듯 일생을 마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도연명이 도피자가 아닌 그 시대를 다른 의미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이었듯이 그 또한 결코 은둔자가 아니다. 마냥 소박한 이상론만을 얘기하는 감상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개인의 늪 속에 파묻힌 이 세태를 엄히 나무란다. ‘철따라 옷 바꿔 입는 일에 골몰하는’ 세상 사람들이 왜 ‘세상을 바꾸자’는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지 그는 이해가 안 간다.

“더 값진 승용차와 집에 인생을 건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자는 말이 먹혀 들어갈까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근본은 사람인데, 새로운 형태의 사람들이 나고 크는 일이 세상 바꾸는 일의 근본임을 믿습니다. 근본은 사람이고 사람들이 모여서 그 문제를 풀라고 한 것이죠. 그래서 인화가 제일이고 지리와 천시는 그 다음 아닌교.”

결국은 사람인 것이다. 농사일을 마치고 난 저녁에 사랑채를 가득 메운 책을 읽는 것도 그에게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던 중 처형 직전 체 게바라에게 음식을 갖다 준 여교사의 얘기를 읽다가 책을 덮은 그다.

사람씨리 만나고 엮이면
만사가 저절로 풀리는법

“마음을 꽉 채운 사람을 만났으니 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부들이 만나고 만나 자리를 만들어 제 구실을 하듯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세상은 사람끼리 서로 진정으로 만나고 엮여야 온전히 사람값을 하는 거란다.

“불교 가르침에 색공교영(色空交瑛)이란 말이 있잖은교. 교영이란 서로 꽃을 피워준다는 말이죠. 진정한 만남은 서로를 빛내주고 드러내는 것이라예. 한쪽이 다른 쪽을 삼켜버리는 게 아니죠.”

그가 10년 전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다 못해 처음 펴냈던 책의 제목은 그렇게 서로를 갉아먹으려고만 드는 세태에 대한 조용한 호통이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혼자서도 잘 사는’ 산골 할아버지. 이 얄팍한 시대, 숨은 현자(賢者)의 나지막한 음성이 산바람을 타고 퍼진다.

인터뷰=이명재 기자mjlee@donga.com

▼전우익의 말말말▼

“잎을 훌훌 털어 버리고

엄동을 맞을 비장한 차비로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은 고난의 길을

뚫고 가려면 간편한 몸차림을

하라는 가르침인 듯합니다.

그렇게 버릴 줄을 알아야 지킬

줄 알겠는데 버리지 못하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어정쩡하게

목숨만 이어갑니다.”

“생나무보다는 고사목, 좀

썩은 나무가 좋은 걸 알았어요.

사람도 속이 어느 만큼 썩어야,

풍상도 겪어야 인심과 세상을

아는 사람 맛 나는 사람이

되듯이 말입니다.”

“밑지는 인생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본전치기, 때때로

손해를 봐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삼시 세끼 먹는 밥이

다 살찌면 큰일납니다. 설사도

하고 토하고, 찌지도 빠지지도

않기에 먹을 수 있지요.”

“은행나무는 세월이 지날수록

노랗게 변해 가고 옻나무는

노란색이 별로 변하진 않지만

자주 매만져 세월과 손때가

묻으면 물리적 무게는 줄어도

존재 자체의 무게는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요. 지위나 권세 명예가

오를수록 존재 자체는

가벼워지다 못해 형편없이 되는

것 아닌가요.”

▼신경림이 본 전우익▼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히

산다. 먹는 것은 늘 밥에 한두

가지 찬이면 된다. 세수를 할

때도 비누를 쓰지 않는다. 밥알

하나, 국물 한 방울 안 남기는

것이 그의 식사 버릇이어서

설거지는 매번 하지 않아도

된다. 과일도 껍질째 먹는다.

‘무얼 했다고 살면서 쓰레기까지

냄기니껴. 쓰레기라도 안

냄기고 살 생각이래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처럼 덜 먹고 덜

입고 덜 갖고 덜 쓰고 덜 놀고

그러면 사는 게 훨씬 단순화될

터인데….”

(시인 신경림의 ‘깊은 산 속의 약초 같은 사람 전우익’)

■전우익 할아버지는…■

▶1925년 경북봉화에서 태어나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후 민청에서 청년활동을 하다 6년 징역을 살고 ▶고향으로 내려가 40여년간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쓴 글을 모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93년)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95년) '사람이 뭔데'(2002년) 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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