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대 개교40주년]2000명 문화예술계 중추 맹활약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34분


서울 예술 대학 안산캠퍼스 전경

서울 예술 대학 안산캠퍼스 전경

《신춘문예 당선자와 방송 연예인을 다수 배출해 온 ‘문화 예술 인재의 요람’ 서울 예술대학이 개교 40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에 나섰다. 서울예대 전신인 드라마센터는 동랑 유치진(東朗 柳致眞·1905∼1973) 선생이 사재를 털어 1962년 서울 남산 예장동에 설립했다. 1973년 서울예술전문학교, 1978년 서울예술전문대학을 거쳐 1998년 서울예술대학으로 이름을 바꾸는 동안 광고창작과 실용음악과 실내디자인과를 처음으로 신설하는 등 현실과 접목된 문화 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서울예대는 경기 안산 고잔동 안산 캠퍼스 이전을 기념해 28일 동랑 유치친 연극상 시상식 및 기념공연 ‘龍天’을 연다.》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예대

지난해 교육공간(안산 캠퍼스)과 창조 현장(남산 캠퍼스)을 분리함으로써 연구와 실험(실습)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올해는 연극과 영화과 방송연예과 실내디자인과를 3년제로 연장했다.

대지 8만평, 건평 6000평, 6개동으로 구성된 안산 캠퍼스는 10년만에 완공했을 만큼 각별한 정성을 들였다. 유치진 선생이 생전에 소유하던 돌하루방 각종 조형물 등을 곳곳에 배치해 캠퍼스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23일 늦은 오후 수업이 끝난 교정에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저녁시간에 자신의 전공이나 취미활동을 하는 학생들 덕분에 안산 캠퍼스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영화 촬영, 사물놀이, 춤판이 이어진다.

□작지만 큰 학교

서울예대 졸업생은 2002년 2월 현재 1만5930명. 그중 현역 문화예술계 인사가 약 1500∼2000명에 이른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탤런트 신구를 비롯, 공연계의 거물급 연출가 오태석 이윤택, 소설가 신경숙 하성란, 시인 채호기 함민복 등이 ‘서울예대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다 .

최인훈 오규원(문예창작과), 윤대성 오태석(극작과), 심길중(방송연예과), 강한섭(영화과), 한충완(실용음악과) 등 스타급 교수들이 후학을 양성하는 것도 서울예대가 문화예술의 큰 축으로 자리잡는데 일조했다. 학생선발도 수능점수와는 상관없이 실기(60%)와 내신(40%)만으로 뽑는다.

문예창작과 82학번인 신경숙씨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예술적 분위기가 가득했던 귀중한 시간’으로 기억했다. “이론 중심이 아닌 직접 시 소설을 읽고 쓰는 분위기였다. 문예창작과는 벤치에 앉아있고 앞에서는 연극이 뒤에서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졸업한 후에도 그 주변을 배회했을 정도로 ‘작지만 큰 학교’였다.”

서울예대는 학생과 교수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강의시간에 허물없이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하지만 결석 3번이면 시험성적과 상관없이 F학점을 주는 철저한 학사관리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이 대학에 학적을 두고 있는 연예인 중에는 5∼6년이 지나도록 졸업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드는 공간

안민수 서울예대 학장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후 연극 공부를 위해 드라마센터에 다시 입학한 1회 졸업생. 그는 서울예대를 ‘재미있는 예술 발명품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실질적인 예술 공부를 위해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편입니다. 창작의 산실이라는 전통과 이곳에 오면 예술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서울 예대의 힘이라 할 수 있죠.”

그는 또 “공연 예술은 산학협동이 이뤄져야하는 분야여서 3년제로 개편했고 졸업 후 1∼2년간 실습 창작을 할 수 있는 심화과정을 두었다”며 “등록금과 재단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문화 발전을 위해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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