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눈]임계순/直言 속에 길 있거늘…

  • 입력 2002년 7월 21일 18시 15분


우리 국민은 까마귀고기를 먹지 않는 국민인데도 불구하고 까마귀고기를 먹은 사람들처럼 무엇이든 잘 잊어먹는 것 같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이 세금포탈과 알선 수재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 지 얼마나 된다고 김대중 현 대통령의 아들이 둘씩이나 줄줄이 감옥에 간단 말인가. 대통령 아들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공무원, 검찰, 기업인 등 우리나라 각계각층에서 자행되고 있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는 그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사한 사태가 되풀이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治道의 모범이 된 당 태종▼

이는 많은 국민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란 인간의 모든 활동이 변화하고 발전해온 자취다. 그러므로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중국 역사상 뛰어난 군주로 알려진 당나라 태종(太宗·재위 626∼649)은 수나라 양제(煬帝)의 폭정으로 내란이 발발하자 아버지(고조·高祖)를 도와 수나라를 타도하고 당나라를 수립하는 데 공헌했다. 그는 즉위 후 양제의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의 과실을 직간하는 위징(魏徵) 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때로 위징이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직언을 하여 죽여버리고 싶기도 하였지만 사심을 누르고 지극히 공정한 정치를 하기에 힘썼다. 그리하여 그의 치세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후세 제왕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후 중국 왕조에서 뛰어난 황제들은 물론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까지도 역사에서 치도(治道)를 구했다.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한(漢)민족 왕조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 황제 주원장(朱元璋·재위 1368∼1398) 역시 역사를 통해 과거 역대 왕조의 멸망의 원인이 외척과 환관의 발호 및 북방 이민족의 침략이나 변방을 방어하던 장군들의 쿠데타였음을 이해하고 제도적으로 제국 멸망의 원인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다시 역사를 망각해 결국 환관의 발호와 이민족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되었다.

명나라를 계승한 만주족 청나라의 초기 군주들 역시 역대 왕조의 멸망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를 마련했기 때문에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 황제 3대에 걸쳐 100년간의 평화와 번영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정부가 1982년부터 2년간 홍콩의 주권 회복을 위해 영국 정부와 협상할 때 영국은 1997년 7월 1일 이후에도 어떠한 형태로든 홍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했으나 중국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오늘날 중국을 저렇게 세계가 주목하도록 만든 개혁 개방의 기수 덩샤오핑은 1983년 6월 하순에 홍콩과 마카오 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은 결코 과거 청 조정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며 청말 열강의 압력에 굴복해 주권을 양보했던 이홍장(李鴻璋) 같은 역할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마오쩌둥이 노년에 판단능력이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을 전횡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노령의 지도자에 의해 권력이 전횡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 지도체제 확립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역사에서 오늘날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를 보면 정치가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정신에 입각해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마치 돈을 벌기 위해 정치를 하려는 것 같다. 실권자도 아닌 대통령의 친인척만 되어도 저렇게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데 만약 유능한 실세이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면 비리가 어떠할지 궁금하다.

▼역사에서 통치 지혜 배우길▼

우리는 광복 이후 두 번의 군사 쿠데타와 그 후의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후 군사 쿠데타에 의한 정권 탈취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역사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에서는 많은 유권자들이 그러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지역주의나 감상적인 정(情) 때문에 공과 사를 혼돈하여 세금포탈, 알선수재 등의 범법행위를 저지른 부도덕한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는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다가올 8·8 재·보선과 12월에 있을 대선에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까마귀고기를 먹은 사람들처럼 후보자들의 과거 행각을 망각하지 말고 지도자의 자질을 꼼꼼히 따져 최선의 지도자는 아닐지라도 최악의 지도자는 선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당선된 지도자들은 실패한 지도자들의 사례를 연구 분석해 그들의 과오를 재연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임계순 한양대 교수·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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