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세계일주 다녀온 권오용씨 가족

  • 입력 2002년 7월 11일 16시 17분


권오용(오른쪽) 정은현씨 부부. 아들 혁인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권오용(오른쪽) 정은현씨 부부. 아들 혁인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경기 수원시 삼성전기에 근무하던 권오용씨(44)는 올해 2월 25일 부인 정은현씨(41) 외아들 혁인군(15)과 함께 만 11개월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혁인군은 귀국한 그날 가족들의 감회를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낯익은 풍경이 지나갔다.

하얀 아파트들, 교회들, 한글 간판들…내가 정말 한국에 돌아온 것은 맞나? 정말 우리나라인가? 1년간 비어있던 집 안방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중국 양쯔강부터 남미의 빙하까지 곳곳의 풍경들이 지나갔다. 이렇게 돌아오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머릿속에 여행의 기억이 남아 있을 뿐….”

권씨 가족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가구들을 1년간 세 주었던 수원시 정자동의 아파트로 가져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양복과 블라우스 등은 좀이 쏠고 곰팡이가 피기도 해서 버려야 했다.

고교 교사를 지냈던 정씨는 집 정리가 끝나자 곧바로 여행 전 직장이었던 눈높이 교육의 강사로 복직했다. 수학을 가르치는 정씨는 아이들에게 좀처럼 세계 여행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귀국하자마자 여행지 곳곳에서 찍어온 1000여장의 사진을 웹사이트(webtour.com)에 올렸다. 그는 현재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16년 간의 삼성전기 생활 마지막 6년간 유럽 동남아 미국 등지를 출장하는 해외영업부에서 일했다. 이번 여행 도중 곳곳에서 맺은 인연과 영어 중국어 구사력을 모조리 자양분으로 삼을 만한 사업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타진해 보고 있다. 무엇보다 여행 도중 가족이 병을 이겨낸 것, 사기 당할 위기에서 벗어난 것 등 어려운 경험들이 그의 자신감을 키웠다.

“중국의 황산부터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까지 곳곳의 심산유곡을 다녔지만 정작 설악산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여행 도중 들었다”며 “6월 말 운무에 싸인 대청봉에 오름으로써 이 자괴감마저 씻어낸 게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주 출발 전 권씨 가족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아들 혁인군의 학업이었다. 휴학이 허용되지 않아 초등학교 동창들의 후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혁인군은 한때 검정고시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남미의 산맥들을 트레킹할 때 자신이 다니던 수원 대평중학교에 재입학하기로 결심했다.

세계여행의 놀라운 스케일은 1년간의 투자를 아깝지 않게 했다. 혁인군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등을 구경하면서 미국 대학생들은 머리 염색, 피어싱에 힙합 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상상이 헛것이었고 그들이 얼마나 엄청난 체력으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버티는지, 그런 틈틈이 스포츠에 얼마나 열중하는지를 확인했다.

세계일주 후 혁인군의 목표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 중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 됐다. 혁인군은 요즘 영어와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6년 전 다니다 만 태권도 도장에 아침마다 나가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1년 여행경비 8000만원

권오용씨 3인 가족의 1년간 세계 일주 비용은 8000만원가량. 여행 전에 항공권, 노트북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 구입, 보험 가입 등으로 2500만원, 여행 도중 5500만원 정도 들었다. 항공권의 경우 세계일주 전용으로 할인된 티켓을 샀다. 한 방향으로만 이동해야 하며 1년 내에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권씨 가족 3인이 21번 비행기를 갈아타며 쓴 항공료는 고작 1100만원. 여행 전 6000만원을 예금해 놓고 여행지에서 쓴 경비는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비자 마스터 모두 결제가능하도록 했다. 환율이 불안정한 아프리카로 들어가기 전에는 현금으로 달러를 준비했다. 부인 정은현씨가 거의 매일 가계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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