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아들과 함께 봄맞이 집안정리

  • 입력 2002년 3월 21일 14시 33분


Q : 평촌의 일호 아빠입니다. 날씨도 풀려 봄이라는 느낌이 드니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집니다. 올해 마흔일곱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가족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문득 드는군요.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간 아들 녀석과 뭔가 재미있는 주말을 만들고 싶은데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던 아빠가 갑자기 다정하게 놀자고 하면 녀석이 당황해 할 것 같아 제가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A : 자녀와 함께 즐기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독한 맘 먹는다고 가능해지는 고시공부 같은 게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함께 즐기는 것이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워야 가능한 일이에요. 느닷없이 같이 놀자는 아빠의 제안에 아들은 마지못해 따라 나서겠지요.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아빠의 의무감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아빠가 놀아주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 놀아주는 것이겠지요.

일호아빠. 가족을 위해 내 자신을 희생했기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이라고 아들에게 강변하고 싶으시지요? 그러나 아들이 기어다니며 집안을 한창 어지럽힐 때, 아이에게 하루 종일 시달린 피곤한 아내와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집안이 부담스러워 회사 근처 술집을 배회하진 않았나요? 그리곤 회식도 일이라며 늦은 귀가를 군대 휴가 나오듯 당당해 했던 숱한 날들을 기억하신다면 지금의 사태가 그렇게 억울한 일은 아니지요.

반성은 이쯤하고, 이번 주말에는 아들과 함께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처박아 두었던 오래된 오디오, 아직 쓸만하지만 들고 다니기엔 영 촌스러운 모델의 자동카메라, 안타깝지만 일호 엄마의 몸에 이젠 작아진 비싼 옷들. 집안 구석 곳곳에 쌓여 있는 이런 물건들을 다 꺼내세요. 아들은 아들대로 자신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레고블록이나 전기 자동차 같은 장난감들을 찾아내 이곳저곳의 인터넷 장터에 올리는 겁니다. 아마 이런 일은 일호가 더 잘할 걸요.

신기한 것은 누가 사갈까 싶은 물건들도 인터넷에 올리면 연락이 온다는 사실이에요. 안 팔리는 물건들은 덤으로 주고, 물물교환도 하며 아들과 함께 소박한 장사를 해보는 겁니다. 적절한 가격이나 흥정방법에 대해 아들과 진지하게 토론하며 집안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정리하는 봄날의 주말은 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될 거예요.

유럽에서는 벼룩시장에서 중고물건들을 팔고, 바꾸는 일이 주말을 즐기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랍니다. 꼭 돈이 필요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차 끌고 밖에 나가 돈을 써야만 주말을 재미있게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정말 다르지요? www.leisure-stud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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