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광고속의 정우성' 화제… "그의 웃음은 자본주의적 섹시함"

  • 입력 2002년 3월 21일 14시 18분


7일 점심시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한식집. 케이블 TV에 삼성카드 광고가 나오자 홀에 앉아 있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숨을 죽인 채 TV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중파보다 더 길게 편집됐던 때문인지, 적막은 꽤 오래갔다. TV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20, 30대 여자 회사원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글쎄, 멋있기만 한 것 같지는 않고, 스마트해 보이기도 하고…. 요즘 여자들이 제일 원하는 남성상 아닌가요?”

“부인을 잘 챙겨주고, 다정다감해 보이는 데, 그게 가식이 아니라 굉장히 몸에 잘 배어 있는 것 같군요.”

‘배우 정우성’보다 ‘삼성카드 정우성’이 요즘 여성들의 입방아에 더 많이 오르고 있다. 박력 가득한 ‘마초맨’의 모습 대신 표정관리나 매너, 귀티나는 옷차림 등으로 어필하는 그의 모습을 두고 ‘자본주의적 섹시함’이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공과 신뢰 '티파니 블루'

정우성은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간다. 그의 친구는 정우성을 보고 “참 멋진 녀석이죠.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나요?”라며 부러운 듯 쳐다본다. 정우성이 친구와 헤어진 후 찾은 곳은 식료품점. 과일과 바게트 몇 개를 고른 뒤 카드로 ‘소액 결제’를 한다. 배경음악인 ‘마이 웨이(My Way)’가 상징하듯, 광고 속 정우성은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철한다. 정장에 배낭, 고급 세단 대신 자전거, ‘쩨쩨하게’ 1만∼2만원을 카드로 결제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 왠지 언밸런스한 상황이 이어지지만 키치적인 냄새는 없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가는 모습이다.

주부 박인숙씨(32·서울 중구 신당동)는 “고급 자동차를 몰고 와서 큰 레스토랑을 빌려 돈잔치를 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남성상이라면 ‘요즘도 저렇게 실속없이 오버하나?’라는 핀잔을 들을 만할 텐데, 광고 속 정우성의 상냥함은 피부에 와 닿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고 속의 정우성은 돈 냄새를 코 앞에서 풍기지 않을 뿐 ‘세련되게 공들인’ 성공남이다. 그가 풍기는 매력은 꼼꼼하게 배치된 소품에서 드러난다. 우선 손꼽을 수 있는 것이 그의 넥타이. 광고를 기획한 제일기획에 따르면 그가 맨 것은 티파니 블루 색상의 던힐제품. ‘티파니 블루’는 하늘색에 메탈소재를 섞은 듯 광택감이 느껴지는 색상으로, 최근 보스, 조르지오 아르마니, 에르메네질도 제냐 등에서 비슷한 제품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연예인 전문 스타일리스트 유재덕씨는 “파란색은 원래 ‘성공’을 의미하는 색상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유행하는 ‘티파니 블루’는 다크 블루나 스카이 블루에 비해 부드럽고 낙천적인 이미지를 주며, ‘성공’과 함께 상대에게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색상으로 통용된다. 뉴욕 금융가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는 색상”이라고 분석했다.

●드러나지 않는 돈

그는 캘빈클라인의 스리버튼 슈트를 입고 있다. 키가 크고(하체가 길면 더 좋고) 허리가 가는 체형에 제격이다. 색상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네이비 블루로, 가격은 매장에서 170만원이다. 흰색 와이셔츠와 클래식한 스타일의 벨트는 타임에서 구입한 것으로 각 20만원, 프라다의 검은색 배낭은 80만원이며, 밑바닥이 운동화 같은 노란 고무로 덮여 있는 폴로의 스니커즈는 15만원이다. 쇼핑바구니가 달린 벤츠의 자전거 역시 웬만한 소형차 한 대 값. 광고 속 정우성은 이렇듯 티 안 나게 들어간 돈이 많으면서도 생활고에 힘든 기색없이 ‘가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의 헤어스타일은 미국의 사립 고교생을 연상시키는 ‘프레피 룩’에 가깝다. 정우성은 “틀 안에서 파격을 추구하는 캐릭터이다 보니, 유난히 곱슬거리는 부분을 깨끗이 펴고, 목 뒤까지 뻗친 머리를 안으로 말아 다듬어야 했다”고 말한다. 서울 압구정동 ‘헤어 0809’의 이종문 원장은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귀가 반쯤 덮인 옆머리다. 80년대 중반 이후 절대 다수 한국의 샐러리맨들은 옆, 뒷머리를 바짝 깎아올린 헤어스타일만을 고집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멍청해 보인다’며 질색하는 스타일이지만…. 무스나 젤로 지나치게 가공하지 않고 자연스레 휘날리도록 놓아 둔 것이 오히려 세련미를 더해준다”고 분석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광고 속 정우성을 가리켜 “미국에서 4년 이상 유학생활을 했고, 현재는 금융회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며 저축액 등을 뺀 순수 생활비로만 월 300만원 이상을 지출하고, 언제든 남는 시간엔 부인을 위해주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남자”로 풀이했다.

●미소와 곰돌이 인형

자전거 바구니에 음식재료를 싣고 웃음을 띤 채 집으로 돌아오는 정우성. 먼저 퇴근한 고소영이 창 밖으로 보이는 정우성을 향해 손짓을 한다. “제 남편이에요. 능력 있는 남자죠. 여자를 사랑할 줄도 알고요….” 집에 들어 온 정우성은 고소영에게 선물을 건넨다. 고소영이 선물상자를 열자 빨간 곰인형이 튀어나오고, 곰인형은 정우성의 목소리로 녹음된 “사랑해∼”를 고소영의 상기된 얼굴 앞에서 외친다.

정우성은 고소영과 큰 눈을 치켜뜨고 시선을 맞춘다. 이어 껴안은 채 가볍게 키스를 주고 받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녀 배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표현을 하듯, 수줍거나 어색하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치의학 전문의들은 “그의 미소를 살펴보면 치아가 뒷 어금니 부위까지 드러나며, 옆 얼굴에 몇 개의 주름이 생길 정도로 입을 크게 위로 벌리고 웃는 표정을 살필 수 있다. 이것은 입 모양을 작게 하는 한국인의 발음구조에서는 보기 힘든 미소이며, 서양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는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벅찬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너 이외 다른 여자를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의사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우성이 고소영에게 주는 곰돌이 인형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아이템이다. 인형은 많은 여성들이 사랑을 주는 대상이자 받는 대상이다. ‘네가 뭘 원하는 지 알 수 있어. 나 역시 너의 인형이 돼 주고 싶어’라는 뜻이 담겨있다. 순진하고 사심없어 보이는 ‘곰의 탈’은 고소영의 마음을 한번 더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하고, 결국 볼에 닿을 듯 말 듯, 부드럽게 훑으며 키스하는 정우성의 입술에 고소영은 기쁨과 ‘받을 것을 받았다’는 자신만만함이 교차하는 미소로 화답한다.

중앙대 이명천 교수(광고홍보학과)는 “한국 남성이 ‘특별한 날, 서툰 애정표현’으로 인정받던 예전 부부 등장 광고의 컨셉트와 달리 ‘일상적인 날, 특별한 애정표현’으로 점수를 받는다는 점에서 연애뿐 만 아니라 결혼에 있어서의 ‘남성 이상형’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배우 정우성에게 직접 광고 속 정우성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그는 어느 여성이나 바라고 그리워할 ‘21세기형 백마 탄 왕자’라고 규정했다. “가벼운 입맞춤과 포옹으로 여성에게 사랑을 확인해 주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이론이다. 남성의 겉포장, 매너,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합쳐져 사랑의 파괴력이 훨씬 더 커진 것 같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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