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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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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화랑의 옷을 입고 에밀레종 앞에 선 국립경주박물관 직원 서유성(徐有聲·58) 김선도(金先度·57)씨는 종을 치는 당목(撞木)을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기도가 끝나자 당목을 종 몸체의 당좌(撞座)에 서너 번 가볍게 댄 뒤 힘껏 첫 종을 울렸다.
에밀레종 타종 동영상[편집본](5:10)
에밀레종 타종 동영상[1](26:40)
에밀레종 타종 동영상[2](11:27)
“에밀레….”
긴 여운이 1분가량 이어졌다. 여운이 끝날 때쯤 두 번째 당목이 당좌에 맞닿았다. 종은 변함없이 맑고 웅장한 소리를 18번 토해냈다. 1270년의 긴 세월을 허공에 매달려있던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이 9년 만에 침묵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9일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마당 한쪽에 걸려있던 에밀레종 주위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날 오전 10시 타종이 시작될 쯤에는 2000여명이 운집했다. 1980년부터 아침저녁으로 에밀레종을 쳐왔던 서씨는 “어젯밤 목욕재계하고 에밀레종을 맞을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타종을 마친 서씨와 김씨의 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태어난 지 100일된 아들을 품에 안고 종소리를 듣고있던 정세진씨(29·대구 달서구 도원동)는 “아이에게 에밀레종의 맑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타종소식을 듣고 일부러 경주를 찾았다는 미국 오리건주 사우스웨스턴 커뮤니티 칼리지의 스티브 크라이들보 총장(63)은 “종소리를 듣고 있자니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듯해 종교적 감화를 받았다”며 “어제 석굴암을 보고 오늘은 에밀레종 소리를 듣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경주 흥륜사 법원(法源) 비구스님은 “에밀레종 소리를 듣고 출가하는 스님이 있을 정도이니 이 종의 울림은 신비롭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타종이 20분가량 진행되는 동안 서울대 이애주 교수는 살풀이춤으로 에밀레종 소리를 맞이했다.
<경주〓이권효기자>sapi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