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우리 친구 아이가" 중고교 조폭 신드롬

  • 입력 2001년 8월 1일 18시 35분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조직폭력배(일명 조폭)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조폭문화 신드롬’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풍조는 청소년들이 폭력배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내고 ‘보스’와 ‘똘마니’로 계급화돼 있는 문화를 동경하는 현상.

이는 ‘조폭’을 미화하는 인터넷 뮤직비디오 영화 만화 등 대중문화의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폭’ 동경실태〓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북의 한 남자중학교 앞.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조폭문화’에 대해 물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예찬론’을 늘어놓았다. 2학년 맹모군(15)은 “만화나 영화의 폭력물에 나오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일진회(교내 폭력서클)에 속한 싸움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일본작가가 그린 폭력만화 10여권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고 있던 정모군(15)도 “폭력물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욕설을 흉내내는 것은 물론이고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싸움 기술 등을 힘이 약한 친구에게 실험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이름에 ‘조폭’이나 ‘깡패’라는 단어가 들어간 동호회수만 150여개. 이들 사이트 대부분은 실제론 ‘조폭’이나 깡패 등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중고교생들이 ‘3학년○반 조폭반’ ‘○○중 조폭군단’ 등의 이름을 내걸고 심한 욕설과 함께 ‘떵어리(덩치)’ ‘후려갈구다(쳐다보다)’ ‘짭새(경찰)’ 등 폭력배들의 은어를 사용한다.

같은 모임 회원들끼리 서로를 ‘조직원’ ‘행동대원’ 등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한 사이트에선 ‘신체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때리면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가’ 등 싸움 기술을 놓고 중고교생 회원들간에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온라인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을 ‘약육강식’의 단순논리로 받아들이는 현상으로 발전한다.

이모군(18·고3년)은 “교실에서 친구가 맞더라도 말리지 않는다. 힘이 없으면 맞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영화 ‘친구’에 나온 ‘조폭’들의 의리와 강인함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조폭’ 마케팅 유행〓‘조폭’의 세계를 다룬 영화 ‘친구’에 이어 ‘조폭’이 벌이는 소동을 코믹하게 그린 ‘신라의 달밤’도 개봉 한달여 만에 전국 관객 300여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제작중인 ‘조폭’ 소재 영화도 모두 6편.

절을 뺏으려는 ‘조폭’과 이에 맞서 싸우는 스님들을 소재로 한 영화 ‘달마야 놀자’의 제작사인 시네월드의 권영주(權英珠·29·여) 마케팅 팀장은 “‘조폭’을 소재로 한 최근의 한국영화의 특징은 단순히 양이 늘었다는 것보다는 과거와 달리 ‘조폭’을 지적이고 남성답고 유머 있게 묘사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진단과 우려〓청소년폭력 예방재단의 장정연(張正娟·30) 상담팀장은 “최근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응답한 초중고교생의 32.9%가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폭력문화를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꼽았다”며 “학생들 스스로가 인식할 정도로 대중매체에 의한 폭력의 미화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청소년학과 김현주(金賢珠·43·여) 교수는 “대중매체에 의한 폭력배와 폭력의 긍정적 묘사가 청소년들의 폭력에 대한 경계심과 거부감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또래 집단에서 발생하는 갈등 해결의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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